한국일보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2013-07-04 (목) 12:00:00
크게 작게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기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장석주 (1954-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전문

어찌하며 사랑을 잃었는지 시인은 알고 있다. 행복해 라고 말하기를 주저했고 함께 거친 길을 걸어가기를 망설였고 상처받음과 소문과 이별을 두려워했으며 온몸을 던져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잃고 싶지 않은 첫사랑이지만 돌이킬 길은 이제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여, 그것이 몇 번째이든 지금 그 첫사랑은 잃지 마시라.

임혜신<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