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걸이

2013-06-1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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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니 조 마케팅 교수·컨설턴트

집 정리를 하다 불현듯 내가 결혼 전부터 갖고 있었던 보석 상자가 생각이 났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 아이를 갖기 전까지 사 모았던 값이 꽤 나가는 액세서리들을 넣어 둔 상자였는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부터는 아예 기억에도 없다가 최근 대청소를 하면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게 어디 있더라...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봤지만 이사를 거듭하며 어디다 잘 넣어둔 게 분명한 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생각난 물건의 행방이 묘연할 때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그 물건에 관한 온갖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 상자 안에는 내가 귀하게 간직했던 목걸이가 있었다. 결혼한 다음해 크리스마스 때 남편이 선물 해준 목걸이였다. 당시 나는 직장에서 머리카락이 한웅큼씩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던 시절이었다. 일도 많고 책임도 무거워서 집에 와서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한창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의 느낌은 간 곳 없던 그 무렵, 남편이 준 목걸이는 나에게 선물 이상의 의미로 다가 왔다. 저 사람이 보석가게에 들어갔구나...

내 취향을 살짝 비껴간 보석 박힌 목걸이를 볼 때마다 그가 부린 만용에 나는 감격했다. 내성적인 그의 성격으로 가게에 들어가기까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터였다. 아내에게 어울리는 목걸이를 고른다고 점원에게 이것저것 물어 봤을 그의 수고에 감사했다.

이 후 그 목걸이는 서랍에 고이 들어앉았다. 아이를 안고 업고 할 때마다 목걸이는 아이가 잡아당기기 딱 좋은 위치에서 덜렁거렸기 때문에 그러다 흠이라도 날까봐 빼서 잘 넣어 두었던 것이다.

신혼시절 거의 유일한 선물이었던 목걸이는 남편의 마음이었고 내 삶의 작은 활력소였다.

다른 이야기지만 결혼 직후 우리는 시부모님 댁에 잠깐 살았다. 거의 얹혀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누구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는데 혼자 오랫동안 산 버릇 때문인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시부모님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게 녹록치 않았다.

몸에 익지 않은 환경 때문이었을까, 어른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어려워서였을까, 얼마 안가 변비가 생겼다. 어느날 시아버님이 유기농 채소로 만든 과자를 사오셔서 식탁 위에 쓱 놓고 가셨다. 맛이 너무 없어서 - 채소로 만든 과자가 맛있을 리가 없다 - 한 개인가 먹고 말았는데 얼마 안가 곰팡이가 피어 통째로 버리게 되었다. 그 때 어머님이 알려주셨다. 그 과자는 “며늘아기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아버님이 일부러 사 오셨다는 사실을.

그 채소로 만든 과자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아버님의 마음만은 지금까지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목걸이는 찾았다. 몇 시간 동안 온 집안을 뒤집고 찾은 목걸이는 또 어느 서랍 안에 소중히 잘 간직되어 있었다. 목걸이를 착용해 보니 그 사이에 내 취향도 변했는지 꽤 마음에 들었다.

나도 남편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가지고 있던 태블릿을 내밀었다. 그 안에 남편이 좋아하는 게임을 다운 받았다. 그가 씩 웃더니 이내 게임을 시작했다. 결혼 생활 10년에 이심전심이라는 단어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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