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의 플랜 B

2013-06-1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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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선영 퍼지 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인생을 살면서 흥분과 쾌감으로 가슴 뛰는 일을 몇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을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부모님 앞에 당당히 보여 드렸을 때 그랬을 것이고, 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직장의 인터뷰를 잘 마치고 나오던 날 오후가 그랬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스토리와 감동에 머리 한대를 맞고 나온 것처럼 영화관을 걸어 나왔을 때 그랬을 것이고, 꿈에 그리던 직장에서 승진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랬을 것이다. 혼자서 마음에 품고 있던 선배가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저녁때 그랬을 것이고, 9시간의 진통 후에 내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본 아침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모든 감각은 점차 지쳐 잠에 빠진 듯 깨어있는 순간보다 차분히 내려앉은 시간이 더 길어지고, 내 주변의 삶은 점차 무덤덤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직장, 식구,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가슴 뛰는 흥분은 잦아들고 하루하루는 똑같은 일상으로 덧칠해져 가는 것 같다.


마치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더 이상 신기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어져 버린 어느 날, 다시 한번 내 가슴을 뛰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대학을 졸업하는 시즌에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 문의를 해온다. 어떤 친구는 학교 졸업이 우선이었기에 재학 중 인턴십을 하지 않은 것이 현재 직장을 찾는데 장애요소가 된다고 후회를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좋아하는 전공 공부를 마쳤지만 과연 이 전공으로 평생 생계를 유지할 직장을 구할 수 있을 지 심각한 회의를 품고 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요즘 내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행운과도 같다.

커리어는 자신이 평생 쌓아야 할 현실의 문제이지 동경하는 꿈은 아니다. 설사 미술사를 전공했다 하더라도 전공에 맞는 직장을 구하는 게 어렵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사를 한 켠으로 일단 치워 놓고, 다른 일을 먼저 시작할 수 있다.

영화를 전공했고 영화 만드는 것을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영화 만들 조건이 안된다면 일단 생업을 먼저 찾는 것이 어쩌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미술사를 전공한 친구가 요리를 배우는 것은 야무진 플랜 B이며, 영화를 공부한 친구가 파이낸싱을 새로 공부하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한 직장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꾸준히 자신의 커리어를 추구해 온 사람이 도전정신이 없다고 비난 받지 않는 것처럼 예술을 공부한 친구들이 현실 속에서 자신의 생계를 지탱할 수 있는 커리어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자 책임감 있는 일이다.

내가 목표로 추구해 온 전공으로 직업을 찾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다. 세상에는 내가 전공한 것 이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또한 내가 꿈꿔 왔던 일을 언젠가 하기 위해 지금은 돌아서 갈 흥미로운 옵션들을 찾을 수 있다.

세상에는 배울 게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그 배움을 통해 내 가슴이 다시 뛰는 것을 느낄 수 기회를 자신에게 주는 데 우리는 너무도 인색하다. 24살의 대학 졸업생이든, 31세의 총각 실업자이든, 40세의 가정주부이건, 52세의 은퇴를 앞둔 가장이건, 눈을 돌려 세상에 뛰어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일에 가슴이 뛴다면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것에 두려워 말자. 플랜 B는 현명한 것이며 책임감 있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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