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도 피고석에 서봐야
2013-06-05 (수) 12:00:00
늙어보면 인간의리 알 수 있고 아파보면 세상인심 파악된다. 있는 부모 병들면 자식들이 앞 다퉈 뛰어 오지만 없는 부모 병들면 자식들이 부담스러워 한다. 자식도 늙어봐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때 부모는 이미 없다.
‘닥터’라는 영화가 있다. 심장수술 의사가 암환자가 된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겸손해진다는 스토리다. 윌리엄 허트 주연의 이 영화를 의사들이 꼭 한번 보았으면 한다.
원칙만 중요시 하면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사물을 판단하게 된다. 사물은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종이 컵은 위에서 보면 원이지만 앞에서 보면 사각형이다. 법은 인간이 보는 견해를 기준으로 꾸며졌기 때문에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결과를 낳는다.
중국고사에 나오는 재상 ‘상앙’의 비극이 좋은 예다. 진나라 효종이 “백성들이 법을 잘 지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라고 묻자 개혁을 내세운 상앙은 “법이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신상필벌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런데 왕의 아들인 태자가 어느 날 법을 어겼다. 상앙은 태자를 잘못 가르쳤다하여 태자의 스승을 참수했다. 효종이 죽자 태자인 혜왕이 복수에 나섰다. 상앙은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는데 아무데서도 그를 재워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앙이 만든 개혁법 중에는 수상한 자를 신고하지 않으면 연좌제로 처벌하고 신고하면 전쟁에서 적의 목을 베어오는 정도의 공으로 포상하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상앙은 신고되어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받았다.
개혁이란 이렇게 어려운 법이다.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부터 달라진 것을 시범 보여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제 대만의 전 총통 천수이벤이 옥중에서 자살을 시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천수이벤은 개혁을 외쳐 총통이 되었던 인물인데 뇌물수수 혐의로 20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니 얼마나 역설적인가. 한국에서는 요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과 뇌물수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모양이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명예훼손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 받았다. 포도대장들이 죄수가 되니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아들의 버진 아일랜드 페이퍼 컴퍼니 소유가 밝혀져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서슬 시퍼렇던 사람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권력이란 그저 잠시 빌려오는 렌트 성격의 힘에 불과함을 실감한다. 페이퍼 컴퍼니 파동에는 왕년의 고참 신문기자도 포함되어 있다.
판사나 검사, 신문기자는 프로다. 아마추어는 남을 상대로 싸우지만 프로는 자신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지식인이 지식만 강조하다보면 교만해져 지혜를 잃게 된다. 교만하면 지식도 무용지물이 된다.
윤창중을 보라. 예리한 필치로 소문났던 왕년의 유명한 보수논객이 요즘 매일 신문에 얻어맞고 있으니 비참하기 짝이 없다. 판사가 죄수가 된 꼴이다. 신문에 얻어맞는 전직 신문기자의 심경이 어떠할까. 언론직에 종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커뮤니티에서도 가진 사람들, 배운 사람들이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판사도 피고석에 서봐야 하고 의사도 아파 봐야 한다. 그래야 갑이 을의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된다. 살맛나는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