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13-06-0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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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아 광고전략가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오랜만에 만난 조카는 훌쩍 커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는 반장이고 공부도 곧 잘하고, 운동에도 재능이 있으며, 여학생들한테 인기도 많은 아이다. 오랜만에 만나기는 했지만, 조카는 말이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도 일찍 겪는다 하니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게임이었다. 게임기뿐 아니라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게임과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수많은 게임들로 조카는 포위당한 듯 보였다.

언니와 형부가 아무리 야단을 치고 정해놓은 시간에만 하도록 규칙을 세워도, 24시간 아이를 감시할 수 없는 노릇이니 게임을 적당히 즐기는 수준에 머물도록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저녁면 가족이 모여 함께 TV를 보다보니 조카는 스포츠 뉴스는 물론, 갖가지 예능 프로며 코미디 프로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게임과 TV - 비단 어린아이들만 중독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스마트폰, 게임기, TV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 세시간씩 TV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면, 일년이면 1,095시간, 날짜로는 46일이다. 그 시간을 쓰고 난 후, 머릿속에는 무엇이 남을까.


내겐 TV가 없다. 퇴근 후 TV 앞에서 밤늦게까지 멍하게 있기도 했고, 재미있는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낸 적도 있다. 하지만 매일 매일 무언가 머릿속에서 빠져나가는 기분, 새롭게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TV를 없애고 난 후로는 하루에 몇시간 씩 텅 빈 시간이 존재한다. TV를 안본다고 그 시간 에 항상 무언가에 열중하는 건 아니지만,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뒤적이거나 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리고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도.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든 일에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옳은 판단과 행동만 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린아이처럼 무언가에 쉽게 현혹되기도 하고 중독되기도 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살 때도 많다.

스스로의 행동을 바꾸기 어렵다면 주변 환경을 바꿔 내가 그 선택에 강요당하게 만드는 것이 더 수월하게 내 행동을 제어하고 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면 전화기가 멀리 있어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 TV가 없으면 TV를 보고 싶은 생각도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은 십년 후의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중요하지 않은 메시지를 체크하느라 스마트폰을 수시로 확인하고, 하루에 두세시간 TV 앞에 앉아 있다면 십년 후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아니면 조금 퇴보하거나.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행해야 한다. 그것이 동네 한바퀴 산책이든, 건강을 위한 운동이든, 나를 아끼는 지인에게 쓰는 진심어린 메시지든, 가족을 위한 건강식 요리이든, 새로운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공부든, 화단 가꾸기든, 조용히 앉아 시집을 읽기든,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듣기든.

적어도 이런 순간에는 내 머리와 가슴이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쪼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확장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위한 시간을 늘려가다 보면 십년 후에는 내가 원하는 모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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