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업은 엄격한 회계사다

2013-04-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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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재 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이제, 한반도 남녘 끝자락의 동백꽃은 슬슬 지고 있겠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꽃이 있으랴만, 춘삼월 싱그러운 햇빛을 받은 동백꽃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빨갛게 멍이’든 응어리를 그대로 토해낸 것일까. 그래서인지 더욱 붉디붉게 핀 동백꽃은 현란하다. 처연한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그 동백꽃이 질 때는 한층 더 처량하고 서럽다. 꽃이 시들기도 전에, 한 줄기 꽃샘바람이라도 스치면 동백꽃은 체념한 듯 후드득 지고 만다. 때로는 살랑이는 미풍에도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듯 송이 째 툭! 툭! 어이없이 떨어진다.
음유시인이라 해도 좋을 가객 송창식은 이렇게 노래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말이에요/…’ 그리고 어느 시인은 동백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라고 그 허허롭고 섭섭함을 시로 읊었다.

겨울 혹한을 견디고 어렵사리 피어난 터라, 가볍거나 만만치 않을 동백꽃임에도 꽃이 질 때의 그 속절없음과 무참함을 생각하면, 자연과 세상 이치의 냉엄함을 깊이 깨닫게 된다.

고국의 새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을 넘겼다. 그러나 그동안 대통령이 고심 끝에 인선한 고위공직의 내정자들이 현재까지 7명이나 줄줄이 낙마했다. 대부분 각종 비리와 탈법, 불법 등의 의혹, 도덕성 문제 등으로 낙마한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억울하게도 본인이 의도치 않은 단순한 실수가 검증과정에서 위법행위로 판명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마’했던 의혹의 대부분이 야속하게도 사실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망연자실케 했다.

그 자리들이 어떤 자리인가. 또 서 있는 거기까지, 수많은 날들을 가슴이 빨갛게 멍이 들도록 그야말로 형설의 공을 쌓아 다다른 자리이다. 그렇게 평생을 쌓아온 빛나는 명예와 가문의 영광이 한 순간 동백꽃이 지듯이 뚝 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아무리 떠나도 결코 떠날 수 없는 영역’인 업인과보(業因果報)라는 법칙의 무서움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업(karma)이란 행위를 말한다. 의지적 행위이며, 의지적 행위의 반복에 의해 형성된 습관이, 적절한 기회에 다시 발동하게 되는 ‘습관적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업의 잠재여력은 행위자의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악업인 경우 언젠가(내생 포함) 반드시 괴로운 장애로, 선업인 경우 역시 언젠간 즐겁고 행복한 과보로 드러나게 된다.

또한 선업이든 악업이든 아무리 작고 하찮은 업인이라도 과보를 받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연들이 영향을 미쳐 엄청나게 증폭된 과보를 받게도 된다. 마치 아마존 강변을 나는 나비의 날개 짓이 일으킨 바람이, 텍사스에 도달할 즈음엔 태풍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이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아무튼 그것이 업인과보의 필연적인 법칙이다.

아마도 앞서 언급된 낙마자들 중에도 당시에는 그들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별 문제없이 용인되고 묵과되는 미미한 탈법행위 정도로 가볍게 여겼을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엄중한 인과법칙에 따른 과보를 예외 없이 받은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업행은 엄격한 회계사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건대, 나는 과연 그들에게 자신 있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업의 장애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가. 답은 언제나 ‘지금의 나’다. 하니, 모두 제 앞가림들 잘 하시고 쉿! 시방 ‘꽃이 지고 있으니 좀 조용히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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