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티벳 여행안내서

2013-01-2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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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곳은 모두 미래다
그날 만나지 못했던 그 사람도
읽지 않은 그 책의 몇 페이지도
옛날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은 떨어지지 않는다
내 지나간 미래, 티벳
인적 없는 깊은 산중에서 얼음이 얼 때
얼음은 얼음 속으로 얼음 속으로
샹그리라, 라고 발음 하는 것 같다.
샹그리라- 오래된 투명한 단단함이
내장하고 있는 깊은 소리
만년설의 맨 아래를 지탱하는 소리
내 오래된 미래, 샹그리라
티벳 히말라야 파미르
아무도 모르게 주문처럼 외운다
안나푸르나 칸첸층가 시샤 팡마 초오유
화살기도하듯 소리내어 중얼거린다
마음의 진동이 알파파로 바뀌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이 평지에서의 몇 년 간
샹그리라, 샹그리라
내 전생들이 천산북로에 오르고 있다
저 앞에 있다.

이문재(1959-) ‘티벳 여행안내서’ 전문

여행사 안내서를 손에 들고 가고 싶은 곳을 꿈꾼다. 샹그리라, 티벳 어딘가 있다는 전설의 땅, 만년설에 갇힌 상상의 천국을. 그러다 시인은 문득 깨닫는다. 샹그리라는 장소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란 것을. 그렇다. 꿈을 향해 가는 자에게 꿈은 미래이다.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그리움의 대상은 미래다. 샹그리라, 티벳 히말라야 파미르, 그 오래된 미래가 시인을 앞서 천산북로에 오르고 있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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