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2013-01-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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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원지
야외무대를 중심으로 빙 둘러
동그랗게 만들어진 롤러블레이드장이 있다
휴일 한낮을 달구는 가을 햇살에
구워지는 저 대형 도너츠
몇 겹씩 둘레로 바퀴를 굴리는 신종개미떼들이 붙어
둥글둥글 돌아간다
목화솜이 툭툭 터지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돌고
대지가 돌고 데굴데굴 눈들이 돌며
유쾌하게 그들이 혼합된다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차이코프스키의 제5번 교향곡 설탕의 춤처럼
커다란 반죽들로 치대이며 부드럽게 흘러가는 그들
가볍게 이스트로 첨가되는 가을바람에
말랑말랑 반죽된 생각들이 부풀어진다
부글부글 발효되어 하늘을 나는 개미떼들
달려온 일상의 속도를 비워가는 가을 냄새를 물고
한가득 마음 봉지에 담기는 저 대형 도너츠가
참 맛있다.

서정임(1962- )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전문

휴일 오후 야외 롤러블레이드장의 활기찬 모습이다. 높고 싱그런 에메랄드빛 하늘 아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스케이트를 탄다. 차이코스프스키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롤러블레이드장은 막 구워지고 있는 거대한 도너츠처럼 쾌활하게 부풀어 오른다. 생의 달콤한 환희를 뜯어먹는 사람들, 신종 개미떼라 불러도 좋다. 부글부글 발효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설탕의 춤, 유쾌하고 맛난 하루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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