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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아까운 난자

2013-01-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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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호(한국 마리아 병원 대표원장)

강한 여자=강한 난자.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여풍(女風)이 심상치 않다.
의료계에서는 처음으로 전체 의사 중 여의사의 비율이 20%가 넘어섰고, 전문의 과정의 첫 단계인 인턴 합격에 여의사가 50% 이상 합격했다. 경제부처의 신입 사무관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올해 임용된 신임 법관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한국은 여성 1인당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1.08명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구감소로 인한 재앙이 예고되고 있는데, 우수한 유전자를 보유한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인생을 즐긴다면 질 좋은 난자들이 모조리 사장되어 버리는 꼴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많이 배우고 똑똑한 여성을 「힘에 부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모셔 가야 할 일등 신붓감」으로 통한다. 똑똑한 여성일수록 「우수한 난자」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수한 난자란, 곧 「우수한 유전자를 담은 난자」를 의미한다.

임신과 출산에 기여하는 99% 공로자는 정자가 아니라 난자다. 정자는 난자와 결합하면서 유전자(DNA)만 전해 줄 뿐, 임신을 위한 그 어떤 역할도 해주지 못한다.
정자에는 핵(DNA)만 있다. 하지만 난자에는 핵도 있고 세포질도 있다. 공장을 가동시키기 위해 에너지원으로 연료가 필요하듯이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고 세포분열을 해서 태아를 만들기 위해선 미토콘드리아가 필요하다. 이 미토콘드리아가 바로 난자의 세포질에 존재한다.

모든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배아 줄기세포의 「원료」인 난자를 확보하기 위해 전국이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비롯한 모든 기관들은 바로 난자의 세포질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자와 달리 난자는 나이에 민감하다. 여자 나이로 서른다섯부터는 생식학적으로 환갑에 속한다. 「손만 잡아도 임신이 된다」는 20대를 흘려보내고 임신이 잘 안 되는 30대 중반이 되면 임신이 되더라도 기형아를 낳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정자의 핵에 있는 DNA는 부모에 따라 변한다. 반면, 난자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는 아버지가 누구든 상관없이 1억 년, 10억 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전된다.

인류의 조상을 유추해 낼 때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모계 추적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딸은 동일한 미토콘드리아 DNA를 가졌기 때문이다. 생식학적으로 따지면 성씨가 모계로 계승되어야 하는 게 옳다.

새 생명 잉태의 사명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새로운 파워군단으로 급부상하는 여걸들이 우수한 유전자로 나라의 일꾼이자 세계의 창조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여성의 중요한 사명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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