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전쟁 및 무력으로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을 영구히 포기하고, 이를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어떤 전력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1946년 11월 새로 공포된 일본국 헌법 9조의 내용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전쟁 발발은 일본의 군비증강 길을 터줬다. 미군을 한국전에 투입해야 했던 맥아더 장군은 1950년 7월 일본의 경찰예비대 창설 및 해안보안청 증원을 지시했고, 이 경찰 예비대가 4년 뒤인 자위대로 탈바꿈 한다. 1945년 무조건 항복 후 9년여 만에 본격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 것으로, 이후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오늘날 일본은 여느 강대국 못지않은 군사력을 보유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지금껏 이 9조가 살아 있어 일본의 대외 군사 활동에 제동을 걸어왔다. 당연히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우익 인사들에게 이 조항은 눈에 가시였고, 집요하게 이에 대한 개정을 주장해 오고 있다.
요즘 역사를 왜곡하려는 일본을 보면 우려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며 생애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른 아베 신조의 행보를 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 역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극우세력을 등에 업은 그는 노골적으로 헌법 9조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뿐 만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끈질긴 압력과 요구에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인정과 사죄를 담은 ‘고노 담호’와 식민지 지배 및 침략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의 수정을 주장, 한국과 중국 등 피해국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몇 년 전 원폭이 투하됐던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잘 정돈된 이 공원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단연 원폭의 상징물 ‘원폭 돔’이다. 히로시마 산업장려관으로 쓰였던 이 건물은 원폭으로 인한 고열로 시멘트 등은 모두 녹아 버리고 둥그런 돔의 뼈대만 남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공원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이 원폭으로 인한 피해국이란 점이 더 부각된다. ‘핵무기가 불러올 수 있는 지구 종말의 단면’이란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이 멈춰져 있다. 2차 대전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제를 경험했던 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 한 토막.
그 때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한국을 지배했던 일본인들이 내뱉는 말들 중 유난히 모욕적으로 들린 것이 있었는데, “조선인들은 정말 어쩔 수 없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내 땅을 잃고, 인권과 인격이 철저히 무시되는 현실에서 비아냥거림과 차별을 담은 그들의 이 말 한 마디는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한국인들을 더욱 깊은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으니 정말 흉기도 이런 흉기는 없지 않았을까.
그동안 미주 한인들은 일본이 저지른 과거사를 바로 잡기 위한 많은 활동을 해왔다. 위안부 소송이 있었고,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 소송도 있었다. 또 독도 영유권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은 진행형이다. 그리고 새해부터는 미 교과서에 ‘동해 병기’ 시민운동도 펼쳐질 계획이다.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는 이 같은 노력들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조만간 아베 신조 총리가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여러 정치인들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기회에 그의 비뚤어진 역사관을 지적하는 운동을 펼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뉴욕 주의 일본정부 위안부 사죄 요구 결의안을 주도한 토니 아벨라 상원의원이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진심으로 과거사를 사죄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배상을 해야 한국과의 우정을 회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라도 누군가를 통해 그에게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자꾸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면 ‘아베 총리는 정말 어쩔 수 없군’이란 말을 듣게 될 것”이란 충고도 함께 말이다.
<황성락 특집 2부/부국장 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