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방관자

2013-01-0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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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은 새해를 맞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아이들을 지키려고 애쓴 교사들까지 무참하게 생명을 잃었다. 차마 음식을 마주 대하기조차 힘든 슬픔이 파도같이 밀려왔다. 저 해맑은 아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내 아들 딸이요, 손주들이고 조카들이고 그랬다. 저들의 햇빛 같은 미소들이, 그리고 천진무구한 몸동작들이 꽃잎처럼 흐드러지며 온통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듯 했다.

졸지에 아이들을 잃은 가족들은 어떻게 숨을 쉬고 먹고 자고 일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그리고 지금 공부하고 있는 내 아이들 학교에서 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기에 참상은 바로 우리들의 것이고 내 가족들의 일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참담한 심정으로 주일예배에 참석했었다. 그러나 대표 기도자의 기도 속에 내 이웃이 당한 슬픔의 내용은 없었다. 목사님 설교에도, 기도에도, 그 어느 순간에도 샌디훅 초등학교의 슬픔을 위로하는 멘트는 전무했다. 9.11때도 그 주일은 오늘과 같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10주년 때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웃들의 참혹한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지 못하는 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어디 크리스찬들에게만 국한되는 일일까. 불교와 천주교 등 한인커뮤니티모임은 다 비슷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아득한 상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만큼 강팍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웃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주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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