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선은 박빙의 대결 속에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박 당선자가 취임 후 남다른 국정운영으로 공약대로 한국을 정의롭고 행복한 나라로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한 달 전 바로 이 지면에서 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필자로서는 그의 당선이 매우 기쁜 반면 앞으로 5년간 그녀가 헤쳐 나갈 험난한 파도를 생각하면 일련의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박근혜 당선자는 늘 온화한 웃음과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박 후보는 혹독한 비판과 억울한 누명을 들으면 분노가 치밀 터인데 어떻게 잘 참아내어 ‘얼음공주’라는 소리까지 듣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부모님의 죽음과 그 후의 어려운 환경은 나로 하여금 감정을 마음속으로 소화시키는 훈련을 키워줬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린 나이부터 누구보다도 가혹한 경험을 치른 박 당선자가 오늘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터득한 생존방법이었을 것이다.
당선 직후 광화문 광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가장 생각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당선자는 “대선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두 홍보팀원과 나의 손을 잡고 더 나은 삶을 요구하던 골목상인의 간절한 얼굴들”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당선 다음날 찾은 국립묘지의 역대 대통령 참배에서도 표정에 한 치의 흩어짐이 없었다. 우리는 그것이 박 당선자의 정치적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공인이 의당 가져야 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선 후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박정희, 육영수 두 분이었을 것이다. 집에 홀로 남았을 때 분명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했을 것이며 박정희 묘소 앞에서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필자는 대학 4학년생으로 그 시대의 산 증인이다. 1년 전 4?19 학생의거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후 민주당은 힘들이지 않고 차지한 권력을 두고 구파, 신파로 나뉘어 당파싸움을 일삼았고, 데모가 끊이지 않아 심지어 데모하지 말자는 데모까지 등장하여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있었다.
군사쿠데타는 어떤 의미에서 정치인들이 자초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연 수출고는 3천만 달러 남짓하였고 해마다 보릿고개로 굶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군사정권이 입안한 경제개발계획으로 한국은 오늘의 경제 강국의 근간을 마련했으니 누구도 그 공을 부인치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당신은 3일을 굶어보지 않고 박정희를 논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현재의 잣대로 지난 역사를 측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에게 바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속으로만 삭이지 말고 필요할 때는 화도 내고 눈물도 흘리라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민주화도 많이 진척되었으니 앞으로는 다른 사람 너무 의식치 말고 얼었던 마음을 활짝 열어 한국을 모두가 잘 사는 나라, 나아가 통일을 준비하는 나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