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철 강 범람에 2년후 언덕 위로…

2012-12-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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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86]

▶ 미션 샌타크루즈

1769년 10월8일 탐험대는 몬트레이 지역을 출발하여 북쪽의 한 강가에 도착했는데 물을 미시던 수많은 참새들이 갑자기 솟아오르는 바람에 놀란 일행은 그 강을 ‘리오 데 파하로’(Rio del Pajaro: 참새 강)이라고 기록하였다. 지금도 그 강을 파하로 리버라고 부른다.

1769년 10월15일 오늘날의 왓슨빌(Watsonville)시를 지나 해안가를 따라 북상한 탐험대는 10월17일 샌로렌조 강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 미션 샌타크루즈(Mission Santa Cruz: 성 십자가 미션)가 자리 잡은 곳이었다. 이 지역에는 오호론(Ohlone) 부족이 살았는데 멀리 동쪽으로부터 이주해 온 요크츠(Yokuts) 부족과 함께 어우러져 살기 시작하면서 제법 커다란 부족으로 성장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1791년 8월28일 페르민 라수엔 신부에 의해 미션이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겨울철에 비가 내리면 샌로렌조 강의 범람으로 인해 침수피해가 이어지자 2년 후에 언덕 위의 자리로 이전을 하여 새로 건축됐다. 미션 샌타크루즈의 당시 상황을 기록한 문서가 있어 잠시 소개하고자 헌다.


‘초창기의 인디언 신자는 소수의 여자와 어린아이가 대부분이었는데 미사 중 어린이들의 손에 들린 촛불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인디언 아버지들 눈에는 그 불빛들이 하늘의 별이 내려와 반짝이는 환상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신기해하며 인디언 아버지들도 그 자리에서 바로 크리스천으로 개종하였는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많은 인디언들이 크리스천이 되는 바람에 교회가 신자로 넘쳐났다.’

1769년부터 1800년까지 미션의 전성기 시대에는 총 1만7,000여명가량의 인디언들이 크리스천으로 개종하고 유럽 문명을 받아들였으며, 당시의 미션 내 농장에서는 밀, 콩, 옥수수 등의 작물을 생산했고, 포도농장과 많은 가축과 양떼를 키우는 목장도 함께 경영했다고 한다. 그 외에 가내공업을 통한 의류 및 가죽을 생산했으며 대장간과 흙벽돌과 지붕 기와 등을 생산하는 공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00년대로 들어서면서 창궐한 홍역 등의 전염병으로 면역이 전혀 없었던 인디언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이를 피해 인디언들이 산속으로 숨어들면서 교회는 거의 방치상태가 되다시피 하였다.

1834년의 멕시코 시대의 미션은 분할되어 팔리는 바람에 목장의 일부로 남아 수난을 겪다가 1863년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이 캘리포니아의 21곳의 초대 미션을 가톨릭교회에 반환하는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미션의 성격을 되살렸다.
오늘날 미션 샌타크루즈는 캘리포니아의 역사보존 지역 342호로 지정되어 남아 있다.

John Kim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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