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 안고 사는 나무

2012-12-2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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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고 우람하며 키 큰 나무들이 진풍경인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내셔널 파크에 간 적이 있다. 얼마나 곧은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자라 있는지, 몇 사람이 들러붙어도 안기 힘들 것 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울퉁불퉁 할아버지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그 거친 피부 속이 궁금했다. 저 거대한 밑둥을 단면으로 자르면 둥글둥글 돌아간 자리의 나이테가 나올 테지

소설가 김훈의 책 ‘자전거 여행’의 나이테 이야기에 큰 설렘과 감동을 받았다. 태양 흑점의 발생주기를 연구하던 미국의 천문학자 더글라스 박사가 100년이 넘은 나무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서 흑점 발생의 그래프를 작성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서부터 나무가 어찌하여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지에 대한 보고가 있다.

나무의 나이테로 그저 산 세월을 알아내는 단순한 시간의 흔적이 아닌 삶의 충만과 결핍, 고통과 기쁨, 일과 휴식에 대하여 그루마다 알 수 있다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무는 개체 안에 세대를 축적하고 지나간 세대는 동심원의 안쪽으로 모이고 젊은 세대가 몸의 바깥쪽을 둘러싸는데 식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 밑둥에서 살아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1 정도에 해당하는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이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더 어리고 여린 것들이 한가운데서 보호받고 있을 것 같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죽어버린 무위의 중심이 유연함 없는 까닭에 나무의 전 생명을 다른 곳으로 굽히지 않고 하늘을 향한 수직으로 버티어주는 것. 이처럼 나무의 늙음이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인 것이다.

중심이 곧게 서지 못하면 나무는 쓰러지고 거죽의 젊음은 살 자리를 잃는다. 중심부는 존재의 고요한 기둥이고 바깥쪽은 생성의 바쁜 현장인데, 새로운 세대의 표층이 태어나면 생성과 존재가 사명을 교대하면서 나이테는 하나씩 늘어가는 것이다. 죽어가며 사는 나무라.

하나하나 알면 알수록 생명의 신비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싫다고 치워낼 수도 좋다고 마냥 머물 수도 없는 우리네 삶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간직함으로 역사를 쓰는 나무처럼 한 해 한 해 겸손히 죽음으로 다시 살 일이다.


<강성희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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