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12-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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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울지만 내가 울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속의 날 것이 불평하며 오장육부를 이리저리 헤집다가 까마귀의 희로애락을 흉내내는 것이다 까마귀를 닮은 동백숲도 내 몸 속에 몇 백 평쯤 널렸다 까마귀 무리가 바닷바람을 피해 붉은 은신처를 찾았다면 내 속의 동백숲에 먼저 바람이 불었을 게다

개울이 흘러 물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다 내 몸에도 한 없이 개울이 있다 몸이라는 지상의 슬픔이 먼저 눈물 글썽이며 몸 밖의 물소리와 합쳐지면서, 끊어지기 위해 팽팽해진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 내 안의 모든 개울과 함께 머리부터 으깨어지며 드잡이질을 나누다가 급기야 포말로 부서지는 것이 콸콸콸 개울물 소리이다 몸속의 천 개쯤 되는 개울의 경사가 급할수록 신열 같은 소리가 드높아지고 안개 시정거리는 좁아진다 개울물 소리를 한번도 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개울은 필사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 송재학(1955 - ) ‘사물 A와 B’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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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상관이 없는 A와 B는 없다.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서로 관련을 가진다. 저 까마귀의 울음도 내 희로애락을 흉내 내는 것이고, 저 개울물 소리도 내 마음속에 있는 갈등과 슬픔의 개울과 부딪혀 콸콸 저리 큰 소리로 흐르는 것이다. 제목을 보고 논리학 강의를 하려는 줄 알았더니 자신의 슬픔이 어떻게 시가 됐는지 말하고 있다. 시인이 뛰어봤자 시인이다. 저 까마귀가 시인이고 슬픔의 강을 가진 당신 또한 시인이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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