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터넷 고장

2012-12-0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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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터넷이 고장 났다. 1994년 18년 전 유학생의 도움으로 처음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나는 “아, 내가 비록 이 캔사스 시골 한구석에 박혀 있어도 이젠 세계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라고 소리친 것이 생각났다.

그 이후로 거의 인터넷을 통해서 하루 생활이 이루어 졌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선지 며칠 전에 인터넷이 고장 나서 제대로 고쳐 지지 않는다. 아무 할일을 없어져 버린 것 같이 허전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신문을 받지 않으니 세상 돌아가는 뉴스도 볼 수 없고, 저녁이면 즐겨보던 드라마도 볼 수 없고 말씀 준비 중 필요했던 각종 정보도 알 길이 없고 예배 준비를 위한 파워포인트 작업에도 많이 아쉽다.

1년 반 전에 캘리포니아에서 중요한 책 몇 권만 달랑 들고 이리로 와서 정말 나의 생활이 단조로운데 더 단조로워진 것이다. 할 수 없이 나는 다른 할 일을 찾아보았다. 그동안 읽고 싶어서 가지고 왔지만 인터넷으로 인해 읽지 못했던 책들을 뒤지기 시작 하였다.


이 책 저책 만지다가 쉐퍼가 쓴 “고뇌하는 그리스도인”을 손에 잡고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1940년대 그리스도인들이 쉐퍼에게 쓰고 쉐퍼가 답장을 한 글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아픔과 진단을 보기 시작했다. 인터넷 고장의 은혜이다. 책을 펴기 전에 인터넷 홍수 속에 헤매다가 가 버린 많은 날들을 생각한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면서 비록 누렇게 발한 색깔이지만 고전 속에서 옛 믿음의 선조들의 신앙을 읽으니 마음이 안정되고 급한 마음이 없어진다.

오늘 미디어 컴으로 바꾸어서 직원이 와서 설치했더니 약 2주일 만에 인터넷이 다시 시작 되었다. 그러나 일정 시간만 사용한 후 끄고 다시 누런 책을 손에 들었다. 책을 통해서 얻어지는 고귀한 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서정길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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