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기수, R. 스트라우드

2012-11-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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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 송순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잘 아시는 이야기 하나 드리겠습니다. 미국을 빛낸 역사적인 인물들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여러 분야의 인물들이 나오게 됩니다.

여성 탐험가 수잔 버처(Susan Butcher), 천재 영화인 스티브 스필버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야구왕 베이드 루스(Bade Ruth),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비행기 발명의 라이트 형제, 자동차 왕 헨리 포드, 록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의료 역학자 조나 실크(Jonas Silk), 우주인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등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중에 이미 영화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전설적인 무기수 조류학자 로버트 스트라우드(Robert Stroud)가 있습니다.

영화에는 극적인 요소를 위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가 덧붙여지지만 실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그는 19세에 그가 살던 마을 알래스카 저누(Juneau)의 작은 댄스홀에서 여자친구 문제로 살인을 저질러 12년형을 선고 받고 워싱턴주 맥네일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거기서 자기를 부엌에서 음식을 훔쳤다고 일러바친 동료 죄수를 칼로 찌름으로써 6개월 징역형이 추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습니다. 그는 원래 초등학교 3년의 교육을 받았을 뿐이었는데, 형기 중 3년 만에 캔사스 주립대학의 통신강의로 공학(engineering), 뮤직, 수학, 신학까지 4개의 학위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12년6개월의 형이 만기되어 출소를 며칠 앞둔 1916년 어느 날 멀리 알래스카에서 찾아온 동생과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은 괘씸한(?) 간수를 살해함으로써 그는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그의 어머니가 당시의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과 그 부인에게 눈물어린 탄원서를 보냈고, 윌슨 대통령은 스트라우드가 급한 성격으로 살인을 저질렀지만, 감옥에서 3년 만에 4개의 학위를 획득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라는 점을 참작해서 사형을 사면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동안 종신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비오는 날, 하루에 한 번 허용되는 형무소 뜰의 산책에서 비와 추위로 죽어가는 어린 참새 한 마리를 발견, 독방으로 가지고 와 극진한 정성으로 살려내었습니다. 이 작은 사건이 그를 미국 역사에서 불멸의 조류학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는 그 새를 돌보면서 새의 생리를 알게 되고 카나리아 한 쌍을 구해서 새의 질병과 예방, 치료 등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교도소 당국은 그의 새 연구가 한 사악한 인간의 갱생을 의미한다고 보아 그를 도와주었는데, 그의 독방은 새 연구실로 변하여 수백 권의 참고도서와 실험기구, 화학물질, 그리고 의약품들로 가득차고 수백 마리의 카나리아를 비롯한 각종 새들이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런저런 사유로 샌프란시스코의 악명 높은 알카드라즈 섬의 형무소로 옮겨갈 때는 여러 트럭이 연구물들을 싣고 따라갔다고 합니다.

그가 집필한 연구 논문들이 밀반출로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곧 미국 동물학계의 카나리아 학자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942년 그의 조류학적인 업적을 세상에 알리는 불멸의 저서 ‘새의 질병 연구’(Digest of the Diseases of Birds)가 출판되어 조류학자로서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무기수로서의 형량은 어김없이 그를 독방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는 56년을 감옥에서 보낸 끝에 노쇠해진 몸으로 1959년에 미주리주의 연방 종합병원에서 76세를 일기로 영욕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연말입니다. 2012년이 끝나가고 요즘, 저는 문득 로버트 스트라우드의 삶이 생각났습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어두운 삶을 살았을지라도 어느 날 자기 삶을 가치 있고 참되게 살려고 결심만 한다면, 그리고 성실하게 실천해 나간다면, 그의 과거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로버트 스트라우드의 삶이 그것을 증명해 보여 줍니다.

성탄절과 새해가 오면 사람들은 부질없이 들뜨거나, 막연한 핑크빛 새해의 꿈에 젖어듭니다. 하지만 진정 가치 있는 삶이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묵묵히 바른 삶을 실천해 나갈 수 있을 때 결실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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