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11-2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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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얀 대낮에도 비 내리고 무지개 섭디다
숲 위에 선 무지개는 완벽한 반원에서 무너지고
대서양 쪽에서 꺼먼 구름이 악마처럼 몰려오는 게 보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하루가 지곤 하였지요.
쪼그만 불씨를 돌려 만찬을 초라하게 차려 먹고
다 저문 밤에 빗질하고 있습니다 그대 보이나요?

2
빛을 머금고 반사하는 예수 초상화 하나 샀지요
침묵의 바다 밑에 가라앉아 그와 나는 늘 마주서고
무료하게 서로 바라보다가 내가 먼저 외면합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과 번개 잠들면 또 악몽이겠네
예수 초상은 언제나 한쪽만 보면서 빛을 머금고
기다려라 기다려라 합니다 그대 들리나요?

이유경(1940 - ) ‘엽서 두 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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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독자 여러분은 두 장의 엽서를 받습니다. 한 장은 시각 이미지로, 다른 한 장은 청각 이미지로 가득 차있습니다. 대서양 쪽에서 몰려오는 구름이 보이는, 아주 먼 어느 곳의 누군가도 여러분과 똑같이 저문 밤에 빗질을 하고 악몽을 꾸고 외로워하며 무언가를 애태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닫아두었던 그대 내면의 고독한 모습이 보이나요? 뜨거운 목소리가 그대 들리나요?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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