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그린 그림 전부가 몇 년 전 단 5분 만에 전소하였을 때 놀랍게도 처음 느낀 기분은 “속이 다 시원하다”였다. 사실 불이 나고 나의 삶은 무척 가벼워졌다. 보일 그림이 없으니 전시는 물 건너가고, 이 그림을 다 본다면 내가 진정한 화가라는 것을 알아볼 사람이 있을 거야 하는 막연한 자부심도 사라지고, ‘목적’이 없이 그냥 가벼이 살아가리라 하였다. 하지만 그림 사랑하는 마음은 더 깊고(?!) 깊어져 요즘은 책에서 발견한 이정의 난<사진>을 복사해 벽에 붙여 놓고 즐긴다.
한 순간에 그려나간 난 잎의 수려함과 생기, 흰 종이와 검은 먹 선의 절창을 닮은 기운이 이루어내는, 가히 조선 삼절이라고 이르는 천재적 감각이 방금 그린 듯 새롭다.
유난히 찌는 더위에, 답답한 세상사에 전전 긍긍할 때 우연히 석지현 스님이 번역한 십현시(十玄詩)를 만나게 되었다. 번개가 치듯 정신이 번쩍 나는 종횡무진한 시공간에 경탄을 하고, 스님이 젊었을 때 번역해서 그런지 거친 욕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싯귀에 박장대소를 하며 혼자 깔깔 웃곤 한다. 모으고, 정리하고, 구축하고, 청소하며 화실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 애쓰는 일상의 태도들을 확 뒤집어엎어 버리는 가벼움의 한없는 깊이에 경탄하고 경탄하며 한 여름을 유쾌히 보냈다.
시 한수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번쩍 들어 올려주고 읽을 때마다 더 웃음이 터져 나오고, 저 우주 끝까지 의식을 확장 시키고, 엎어 버리고, 가벼이 날라 다니게 하다니, 이 시를 읽으며 함께 웃어줄 벗이 누가 있을까, 혼자 읽기는 너무나 아깝다.
깨달음을 얻겠다고 일생 배시시 웃는, 웃는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 절을 해 주고 싶은 후배를 생각하기도 하고 “누나, 나비처럼 표표히 걸어”라고 말하며 이상의 싯귀를 건네는 동생에게 보내어 그 애가 한번 웃을 것을 생각하니 스스로 즐겁다. 시를 베껴 보내 주려고 하니 얼마나 긴지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
다시 시를 베끼며 또다시 박장대소를 하는 새에 여름은 가고 이제 제법 서늘한 가을이 왔다.
“어찌타 경계 따위에 묶여 머뭇하겠는가
비(批), 하늘 기대인 장검이다.
오는 길 머리칼은 서리가 뽀얗구나
비(批), 불법은 오직 백발에 있다.
한길가에 기약없이 만나는 소식
비(批), 종횡무진 저 사내를 만났다 헤어졌다. 헤어졌다 또 만났다.
눈가림 걸레쪽을 부처라 부른다면
비(批), 아지랭이 원래 물이 아니거늘 목마른 사슴아 너 어찌 마시려느냐
… 중략 …
저 푸른 못 거울 한장
비(批), 구름과 진흙 그 차이로다
무명(無命) 저 산이마에 우뢰소리 울린다.
비(批), 경쾌하다 평생이여.
저 지하 기름 가마 한번 불어 꺼버리고
비(批), 닭 한 마리 잡는데 소 칼까지 쓰고 있군.
알았다, 알았다, 알았을 때 아는 것 하나 없고
비(批), 옆 사람 보기가 민망 하구나 …”
십현시 중 일부분이다. 평소에 늘 ‘깊은 마음’ ‘깊은 색조’ 하며 깊이를 좋아하는 나에게 “흥, 깊지 않은 게 어디 있어”라는 싯귀에 제대로 한방 맞을 때의 통쾌함에 속이 다 시원한데 이 시의 곳곳에 그런 놀라운 기쁨이 있다.
“십현시, 이 분화구에 내가 쳐들어왔다… 독자여 몰라도 좋다. 까만 건 글씨요, 흰 것은 종이라는 이것만 알면 그만이다. 십현시와의 이 만남을 기뻐하고 기뻐하고 또 기뻐할 진저…”
1970년 현암사에서 출판된 선시라는 책에서 십현시를 발견했는데 번역 후기를 쓰던 젊은 시절 스님의 기개가 또한 즐겁다.
<박혜숙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