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지난 24일 자신의 역사인식 논란과 관련해 마침내 사과했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킨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거나 유신과 인혁당 사건은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던 종전 입장에서 크게 진일보한 것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사과라면 왜 이제서야 하느냐는 비판과 함께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 또한 매우 높다. 자신의 부적절한 역사인식 논란과 연이은 측근 비리로 지지율이 흔들리자 박근혜가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한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어찌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 뿐이겠는가.
보수 논객 조갑제씨의 비판 또한 신랄하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씨는 아버지를 옹호하고 그 평가를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생각이 이 짧은 기간에 180도로 바뀔 수가 있는가”라며 “표를 얻기 위한 정치쇼”라고 힐난했다. 역사인식의 정립과 전환이 쉽지 않음을 감안할 때 사과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자식이 사과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염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만일 생전에 내 아버지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한다면 내가 나서서 아버지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들의 응어리진 마음이 풀어지도록 성심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자식 된 도리가 아닐까.
박근혜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하물며 대통령이 되어 국민대통합을 이루려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독재자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로 인해 상처 받고 지금도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무릎 꿇고 아버지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부둥켜안고 함께 울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사과문을 읽고 당사를 떠나면서 박근혜는 “제 진심을 받아 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22일 동요 ‘고향의 봄’을 쓴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딸이 아버지의 친일행위에 대해 사과했다. 친일행위라야 고작 너댓 편의 친일시를 쓴 것이 전부다. 이는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의 민족반역행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원수의 딸은 “아버지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모든 분들에게 사죄한다”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그날 그 자리에 동석했던 사람들 모두가 같이 울었다. 그녀의 진심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가 과거사에 대한 자신의 사과를 실천할 방안으로 ‘국민대통합위원회 설치’를 제시한지 불과 4일 뒤인 지난 28일 새누리당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던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과 관련한 증인 채택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 시대에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가족에게 사과하고 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던 박근혜의 다짐이 무색해졌다.
박근혜는 이러고도 또 자신의 진심(?)을 믿어달라고 말 할 것인가. 쉽지 않은 사과를 하고도 욕을 먹는 이유가 뭔지 박근혜는 정녕 모르는가.
<김중산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