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10-0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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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 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1933 - 1997) ‘울음이 타는 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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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눴던 첫 사랑은 가고, 여름날의 그 다음 사랑까지 지나버린 가을날이다, 그것도 제삿날 저녁나절이다. 산골에서 시작해 큰 강을 이루듯 허무하고도 슬픈 느낌이 시 속에서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강에 비친 노을을 보고 울음이 타고 있다고 하더니 소리 죽은 강이 미칠 일 하나로 흐르고 있다고 한다. 노을이 번지듯, 강물이 흐르듯, 가버린 사랑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전염되는 시간이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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