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뒤숭숭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관리가 물러나고, 그 간 별 볼 일 없던 사람이 갑자기 실세 밑에 들어가 실력자 행세를 했다.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한자리 해야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언제 적 이야기인가. 5백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 여말(麗末)에서 조선조로 넘어온 시기. 고려 왕실이 붕괴되고 조선조가 새로 들어선 무렵 장안에서는 이처럼 다들 연줄을 잡으려고 난리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신흥왕조인 조선 조정은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분경(奔競)을 금지하는 법이다.
분경은 권력자 주변 인물이나 친인척들이 벼슬을 얻기 위해 실세 권력자 집에 분주히 드나드는 것을 말한다. 요즘 말로 인사 청탁 로비활동이라고 할까.
분경금지법이 제정된 때는 정종1년(1399), 그러니까 조선조가 새로 들어선지 7년이 되는 해다. 그 후 더욱 발전해 성종 1년(1470)에는 분경금지법이 조선조의 헌법격인 경국대전에 법제화됐다.
이 분경금지법은 그러나 조선조 내내 별 효력이 없었다. 온갖 은밀한 수법을 동원해 권력자에 줄을 대고 벼슬을 얻은 것이 조선정치의 이면사이었기 때문이다.
예외적 인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충무공 이순신이다. 충무공이 벼슬에 나간 지 얼마 안됐을 때 그의 능력과 강직한 성품은 주변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조판서는 율곡(栗谷) 이이였다. 율곡과 이 충무공은 같은 덕수(德水) 이씨다. 충무공의 성품에 대해서도 들었고 또 같은 덕수 이씨라는 연고도 있어 율곡은 사람을 보내 충무공을 만나기를 청했다.
충무공은 그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이제 벼슬자리에 나간 지 얼마 안 되는 마당에 아무리 동성동본의 집안 어른이라고 하나 이조판서를 만난다는 것은 마땅치 않다”며 완곡히 사양을 한 것이다.
새누리당이 현대판 분경금지법인 특별 감찰관제를 입법화한다고 한다. 이 제도는 대통령의 친·인척과 권력실세 등을 ‘특수 관계인’으로 지정하고, 이들이 이권을 챙기거나 인사 청탁하는 것을 금지토록 한다는 것이다.
제도를 만든다고 권력형 친인척 비리가 과연 근절될까. 아무리 직제를 잘 만들고, 권한을 부여해도 권력자가 굳건한 정책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제도는 있으나마나 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뒤쫓는 부나비 같은 인생의 모습. 이는 그러나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대선정국을 맞아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벌써부터 실세에 줄 대기 이야기가 꽤나 시끄럽게 들려와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