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두 방울만 넣어도“절묘한 맛 살아나네”

2012-09-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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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 식초

수천 년 전부터 애용되며 세계 공통 만병통치약이라 여겨지는 식초는 살균과 해독, 지방 분해 등의 효과로 현대에도 각광받는 인기식품이다. 한두 방울 정도의 작은 양으로 요리의 맛을 절묘하게 살려내기도 하고, 반대로 맛을 완전히 망쳐버리기도 하는 신기한 식재료이다. 음식으로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필수품이기도 한 식초. 제대로 만든 식초는 여러 가지 천연원료를 통해 탄생하고, 저장방법과 숙성기간에 따라 농도, 풍미, 색깔이 달라져 그 종류와 요리법 또한 다양하다. 수많은 식초 중에서 오늘은 와인 식초에 대해 알아보자.

레드와인 식초 깊은 풍미, 고기와 어울려
화이트와인 식초 산뜻·깔끔… 가장 일반적
샴페인 식초 상쾌·세련, 섬세한 요리에
셰리 식초 달콤한 맛, 스페인산 최고

영어 ‘비네거’(vinegar)의 어원은 프랑스어인 ‘뱅’(vin, 와인)과 ‘애그르’(aigre, 시다)의 합성어로 탄생한 단어이다. ‘신 와인’이라는 뜻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에서의 식초는 와인에서 얻어진 것이 그 시작이다.


성서에도 ‘신맛 나는 포도주’가 산미료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기원 전 1세기 저서인 ‘농업에 관하여’에 ‘양배추에 식초와 소금으로 맛을 내 먹으면 건강에 좋다’는 기록이 있어 식초는 오래 전부터 인류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리 요리가 발달한 그리스-로마시대를 지나며 여러 가지 식초를 사용한 요리법이 개발되어 오늘날까지도 올리브오일과 식초를 기본 양념으로 한 지중해식 요리는 건강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아 여러 가지 요리의 장점을 살려주는 주요 양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와인 식초는 와인 생산지역에서 와인과 함께 만들어져 왔으며, 와인의 역사와 함께 발전되어 왔다. 와인의 종류만큼 식초의 종류가 많고, 그 맛과 용도도 와인과 닮았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와인 식초는 레드, 화이트, 샴페인, 셰리(sherry)가 있는데, 사용법과 맛의 차이도 조금씩 있다.

레드와인 식초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고, 체지방의 비율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고, 고기요리에도 잘 어울릴 만큼 풍미가 깊고 진하다.

화이트와인 식초는 서양요리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식초로 산뜻하면서도 강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허브, 향신료 등을 넣어 소스나 드레싱을 만드는데 적절하게 사용되며, 레서피에 특정 식초를 지칭하지 않았다면 어디에 사용해도 무방하다.

샴페인 식초는 와인 식초 중 가장 고급으로 꼽히며, 상쾌하고 세련된 풍미를 가지고 있다. 굴이나 생선처럼 맛이 연하고 섬세한 음식에 제격이고, 샐러드드레싱에 사용하면 좋다.

셰리 식초는 스페인 서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으로 만든 것을 정통으로 여기기 때문에 스페인 제품을 최고로 친다. 최고급의 경우 셰리 와인보다 가격이 비싸다. 나무통에서 숙성되는 동안 또렷하고 부드러운 풍미와 달콤한 맛이 증가되어 만들어진다. 좋은 제품은 스페인 정부에서 공식 인정한 마크가 붙어 있기도 하다. 폭찹, 스테이크 등에 소스를 만들거나 고기를 절이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포도를 원료로 한 식초 중에 유명한 것으로 발사믹 식초를 꼽을 수 있는데, 발사믹은 와인에서 얻은 식초가 아니라 포도즙으로 만든다. 신선한 포도즙을 가열해 졸여서 농축 액상이 되면 여기에 효모와 박테리아를 침투시켜 나무통에서 숙성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와인식초라고 할 수는 없다.

숙성 될수록 부드럽고 깊은 맛… 2년 내 먹어야

<와인 식초의 기본>
좋은 양조 식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와인, 청결한 제조환경과 좋은 효모 또는 초산균(모균, mother)이 기본이다. 식초 발효를 위해 설탕과 물을 첨가하는 것은 맛과 질을 떨어뜨린다.

식초는 최소 5%~최대 7% 정도의 산을 가져야 음식에 사용하기에 적당하다. 산의 수치는 알콜도수보다 약간 낮게 나오는데(알콜도수가 5.5%인 맥주로 만든 식초는 약 5%의 산도를 가진다) 11~12%의 알콜도수를 가진 와인을 식초로 만들기 위해서는 알콜을 5.5~7%로 희석시켜야 한다.

식초는 철이나 알루미늄과 닿으면 분자를 유출시켜 분해하므로 직접 닿지 않도록 하고, 유리병이나 자기류에 2/3 정도만 채워서 공기가 통하는 천이나 솜으로 입구를 막아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장소에 보관한다.

발효되는 적당한 온도는 화씨 78~84도 사이가 적당하다. 적정 온도에서 6~8주 정도가 걸리면 발효가 완성되는데, 온도가 높을수록 기간이 단축된다. 하지만 화씨 93도 이상에서는 발효가 늦어지고, 화씨 140도 이상의 열을 가하면 초산균이 죽는다.

2주일 정도 지나면 초산막이 형성되는데, 부드러운 깃털모양의 회색빛 나는 막은 꽤 두껍고 무겁다. 막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그대로 두면 막이 무거워져 스스로 가라앉고 다른 막이 형성된다. 이때 가라앉은 막은 제거해서 버려야 한다. 완성됐다 싶을 때 산도 측정을 하면 모든 알콜이 식초로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사용할 만큼의 양을 덜어 저온살균하고, 나머지는 다른 식초를 만들기 위한 초산균으로 사용하면 된다.

<와인이 식초가 되는 원리>
와인 식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먼 옛날 먹다 남은 와인을 실온에 마개 없이 방치했다가 식초가 된 것을 발견한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알콜과 당분 성분을 가진 식초의 원료가 공기와 접촉해 공기 속의 식초 발효세균(acetobactor aceti)을 만나면 식초로 변한다. 쉬운 예로 와인, 애플사이더, 과일주스 등의 마개를 열어 상온에 그냥 방치하면 일주일 정도 후에 식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식초세균은 알콜을 산화시켜 아세트산(식초의 주성분)으로 변형하는데, 알콜 발효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모든 곳에 존재하며 초파리가 이 세균을 곳곳에 옮겨주는 역할도 한다. 식초 세균은 화씨 76도에서 86도 사이에서 가장 쉽게 번식하며, 알콜 농도가 10%를 넘으면 쉽게 번지지 못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와인을 제조할 때는 12~13%의 알콜이 생성되어야 품질을 유지할 수 있고, 와인으로 식초를 만들 때는 알콜 도수를 낮춰줘야 한다.

<와인 식초의 숙성>
식초가 처음 만들어지면 아주 강한 맛을 낸다. 이렇게 강한 식초는 숙성이 될수록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는데, 맛에 영향을 미치는 미네럴과 에스테르라는 물질 때문이다. 이는 시원한 온도인 화씨 50~60도에서 지속적으로 보관해 6개월이 지나면 만들어진다. 안정적인 보관은 부유 고체 물질들을 가라앉게 함으로써 식초를 맑고 환하게 만든다. 맑고 깨끗한 상태의 숙성 식초를 소독한 병에 담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봉한다. 와이너리의 식초병은 옛날식으로 코르크 마개로 막아 녹인 왁스에 여러 번 담가 밀봉한 제품이 많이 있다. 숙성된 식초의 질은 최대 2년까지 향상되다가 그 후로는 점차 떨어진다.

<와인 식초의 보관 방법>
맛있는 식초가 완성되면 154도까지 가열해서 30분 정도 저온살균하는 것이 좋다. 저온살균 후에는 1갤런 당 보드카 1작은 술을 넣거나, 향을 좋게 하고 싶다면 참나무 또는 너도밤나무 조각을 최대 1컵 정도 넣어 보관하면 된다. 저온살균된 식초는 식초균을 죽인 상태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식초 초산균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반면, 부패로 이어질 수 있는 막의 형성도 없어져 밀봉한 채로 보관만 잘 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저온살균 때 156도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산도가 떨어지고 향기가 감퇴된다.

여러 가지 와인 식초 레서피

*스파이스드 화이트와인 드레싱

치즈가 들어간 샐러드나 로스트비프 샐러드에 잘 어울린다.

▶재료 화이트와인 식초 8큰 술, 정향 2개, 팔각 1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10큰 술, 소금과 후추 약간씩
▶만들기
1. 작은 소스 팬에 비니거를 넣고 정향, 팔각, 물 1큰 술을 넣어 가열한다.
2. 양이 반으로 줄 때까지 졸이고 불에서 내려 식힌다.
3. 2를 뚜껑 있는 병에 넣고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를 넣어서 섞는다.
4. 간을 보고 가감한다.

*크리미 프렌치드레싱

쌉쌀한 맛이 나는 채소 샐러드와 잘 어울린다.

▶재료 화이트와인 식초 5큰 술, 호두 기름 4큰 술, 크림 프레시 1/2컵, 디존 머스터드 2작은 술, 소금과 후추 약간씩, 파슬리 한줌 곱게 다진 것,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8큰 술
▶만들기
1. 모든 재료를 뚜껑 있는 병에 담고 흔들어 섞는다.
2. 간을 보고 입맛에 맞도록 식초나 오일을 가감한다.

*레드와인 식초와 서양배 처트니

폭찹 스테이크나 쇠고기 스테이크에 사이드로 곁들이면 좋다.

▶재료 단단한 서양배 2개, 레드와인 식초 1/3컵, 황설탕 1/2컵, 레드페퍼 플레이크 1/2작은 술
▶만들기
1. 중간 크기의 소스팬에 양파, 배, 식초, 설탕, 레드페퍼 플레이크를 넣고 가열해 끓인다.
2. 끓어오르면 불을 낮추고 가끔 저어주면서 양이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약 20분 정도 졸인다.
3. 양파와 배가 완전히 익어 잼과 같은 상태가 되면 불에서 내린다.

*생굴에 곁들이는 샴페인 식초 미뇨네트

▶재료 샴페인 1/4컵, 샴페인 식초 2큰 술, 중간크기의 샬롯 1개 곱게 다진 것(2작은 술), 후추
▶만들기
1. 샴페인과 식초를 섞는다.
2. 1에 다진 샬롯을 넣어 섞고 후추로 간해 굴 위에 한 작은 술씩 얹어낸다.
3. 같은 분량의 레서피에 무염 버터를 더하면 홍합찜 소스로도 훌륭하다.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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