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9-2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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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녀는 이름 없는 시인이다
내가 가끔 봉급을 타 옷가지며 먹을 것을 사 보낼 때면
‘아이구 야아! 네가 혀로 밭을 갈아 번 돈인데 함부로 쓰지 마라’신다
혀로 밭을 갈다니! 학교라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그녀,
그녀의 입에서 이런 시가 탄생되는 저 깊은 생의 옹이,
옹이는 샘물이 되고 길이 되고 그녀를 견디게 하는 기(氣)가 되어
오늘은 시인이 되었나 보다

- 이영춘(1941 - ) ‘혀로 밭을 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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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봉급을 타 소소한 물건을 ‘가끔’ 보내놓고 미안해하는데 어머니는 혀로 밭을 갈아 번 돈인데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하신다. 혀로 밭을 갈다니! 교사인 화자가 종일 혀품 파는 일을 어머니가 얼마나 장하고 애처롭게 생각하는지 백 마디 시구보다 더 잘 보여준다. 시는 지식이나 교육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절절한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니의 모든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눈물나는 시가 된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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