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9-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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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움막에 홀로, 가난을 배앓이 앓듯
살아온 할머니가 있다
오늘도 움막에는 누더기 같은 해거름이 인다
할머니는 산아래 들샘으로 내려가
마을 아낙이 겉보리 때껴 씻은 보리뜨물 한 바가지 얻어와
쪼글탱이 양푼에 부어 끓인다
아궁이에 금불 지핀 불 위에 얹고
말린 쑥부쟁이 한 줌 풀어넣어 끓인다
정재 바닥엔 불사조 같은 어둠이 내린다
어둠은 찌들어빠진 가난의 똥처럼, 검다

찬바람이 한바탕 휘젓고 지나간다
정재문 밖, 언덕받이에 서 있는 상수리나무에서
쌀 씻는 소리가 난다
쌀 씻는 소리는 한밤 봉창을 스치는 달빛에도 난다

할머니가 사는 움막은 옛 짐승들의 고향같다


- 송상욱(1939 - ) ‘움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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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욱 선생님, 그간도 건강하신지요. 제가 평양을 방문하기 전날 밤, 몇몇의 문인들과 술자리를 하고 못 뵈었으니 십 년쯤 만에 안부를 여쭙니다. 선생님이 작업실로 쓰시던 인사동의 움막 같은 방에는 연탄재에 붉은 장미꽃이 여전히 꽂혀 있나요. 직접 기타로 반주하며 부용산과 나그네 설움을 때때로 부르시나요. 아직도 사비를 털어 개인 시지를 부정기적으로 발행하시나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이 정재 바닥에 어둠이 내리듯 선생님의 어깨 위로 오늘도 조용히 내려앉고 있나요.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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