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9-1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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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건

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 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 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 불타는 다른 나무의 뜨거움을.

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몸에 대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난다.


- 진은영(1970 - ) ‘긴 손가락의 시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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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글을 쓰고 머리가 뒤 따라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성과 논리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손가락이야말로 감성을 포착하는 촉수다.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잔가지처럼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 다른 나무의 마음까지도 느낀다. 여리고 물을 잘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못하지만, 이파리를 틔우고 꽃을 피운다. 시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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