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독립적이고, 외톨이 성향까지 보이며, 주인에게 살갑게 굴지 않는 강아지가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에 등장한다. 어느 날 그 강아지가 앞쪽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자 주인은 그를 침대 곁에 두고 보살피기 시작한다.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느라 밤마다 낑낑대는 강아지 때문에 잠을 설치지만 지극한 정성으로 다독거리는 주인의 얼굴에는 의욕과 만족이 가득하다. 그러나 강아지 상처가 아물고 회복되면서 주인의 표정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강아지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겠구나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은 강아지로부터 소외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망치로 강아지 다리를 부러뜨리고 만다.
지극히 자유로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엔가 얽매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얽매이는 수준과 정도에 따라 몰입 혹은 중독을 낳는다. 강아지 치료와 간호에 몰입하는 동안 주인은 강아지로부터 삶의 동기와 행복을 찾았지만 나중에는 그에게 매달리는 의존증에 걸렸다. 중독이다.
강아지 주인처럼 학생들도 몰입이냐 중독이냐 기로에 놓여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독을 몰입으로 전환해야 하는 부담을 떠맡고 있다. 동부 소재 고등학교에서 새 학기를 시작하는 M양의 학교 준비물 리스트에는 아이패드(iPad)가 적혀 있었다. 학교 측은 “무거운 교과서가 가득 찬 가방을 메고 다니느라 학생들의 어깨가 처지고 허리가 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번 학기부터 전자 교과서를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얼핏 보면 바람직한 처방이다. 그렇지만 소위 말하는 디지털 마약에 이미 탐닉되어 있는 학생들로 하여금 무슨 수로 중독을 몰입으로 전환시킬 것인지 묘안 없이 떠미는 무방비스런 처사다. 유튜브를 통해 지옥의 문, 신의 손, 킬링 머신 같은 동영상을 즐기며 환각 상태를 맛보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채팅하느라 요가의 명상 심지어 열반에 이르는 점입가경을 경험하며, 스마트 폰 알람으로 시작해서 스마트폰 문자 500개를 날리며 하루를 마감하는 학생들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다. 생각의 죽음이다.
삼무(三無) 즉, 무감각ㆍ무절제ㆍ무사유를 생성한 디지털 기기를 즐길 때 학생들은 컨텐츠가 무슨 내용인지, 무슨 의도인지, 나와 무슨 관계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추론과 성찰이 가능할까.
고등학생 80% 이상이 장래 직업으로 전문직을 원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화면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그들의 손가락은 무엇을 찾고 있을까. 자신의 관심사(interest)일까 아니면 재미(fun)일까. 전자를 쫓는 것은 추론과 성찰을 통해 꿈을 이루려는 몰입이지만 후자를 쫓는 것은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밀려나 중독으로 빠지는 길이다.
헉슬리의 ‘신세계’는 이미 도래했다. “외부 압력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력을 무력화시키는 테크놀로지를 숭배할 것”이라는 예언이 적중했다. 생각 사형집행인, 주의력 결핍장애를 위한 훈련장, 두뇌를 지배하는 최면술사라고 부를 수 있는 디지털 기기는 강아지처럼 하나의 집안 식구로 존재한다. 그 강아지를 도우미로 고용할지 주인으로 행세케 할지는 각자가 정할 일이다.
<대니얼 홍 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