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8-3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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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사과나무를 흔드느라 말이 없고
사과나무는 사과를 꼭 쥐고 말이 없다
바람 잔 뒤
가지에 사과 하나 겨우 매단 사과나무
어리둥절 서 있다
우듬지 걸려 있던 진회색의 슬픔
없다!
그 자리가
가만히 비어 있다

이경림(1947 - ) ‘태풍, 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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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불고 폭우가 쓸고 간 뒤에도 남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이십 년 전, 엘에이 폭동이 어렵게 마련한 가게를 휩쓸고 지나갔다. 폭도들은 매장의 물건은 물론 입구에 불까지 질렀다. 그래도 사람은 다치지 않았고 도우려는 많은 인정들이 있어서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다 떨어진 사과나무에 남겨진 사과 한 알. 혹은 그마저도 떨어져버렸다 하더라도 빈 자리는 남아있다. 슬픔을 날려 보내고 다시 사과를 키워낼 그 자리.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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