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모녀
2012-07-28 (토) 12:00:00
며칠 전 도서관. 익숙한 한국 말소리가 들렸다. 대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한국말을 들으면 반가운 법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40대 초중반 돼 보이는 여성이 10살 정도의 여자 아이를 붙잡고 산수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시끄럽다 타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몇이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곳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었다. 나 혼자 누가 여자의 한국말을 알아들을까봐 눈치를 살폈다. 낯이 뜨거웠다.
“답이 뭐라고? 또 틀렸잖아. 너는 이 간단하고 기본적인 걸 왜 못 하는 거야. 머리가 나쁘면 옆에 적어가면서 풀기라도 하던지. 내일 아침부터 세 장씩 문제 더 풀어!”
등 뒤로도 아이가 주눅이 든 것이 느껴졌다. 아이는 말없이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문제를 풀거나 답을 말 할 때도 모기만한 소리로 간신히, 자신 없게 웅얼거렸다. 엄마가 자리를 떴을 때도 그랬다.
아이는 그 나이로는 과중한 집중력으로 문제 푸는 데 몰두했다. 엄마의 협박과 비난이 겁에 질리게 만들어 아이를 아이답지 않게 ‘훌륭한 학생’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아이의 타고난 몸과 마음의 모양새 그대로를 원래의 결대로 자라도록하는 일이다.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며 살 수 없다는 사실, 싫어도 여러 가지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타고난 결을 난도질하고 결국 아이가 자신이 아닌 사람이 되도록 몰아치는 과정은 양육이 아닌 사육이다. 아이가 ‘나는 귀한 사람이다’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게 배워야 하는 것은 없다.
아이를 돌려 앉히고 말해줄 순 없었다. 그깟 계산이야 하다보면 천천히 느는 것이라고, 그걸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듯 협박하는 어른들은 잘못이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귤 알맹이처럼 동그란 어깨가 쪼글쪼글 구겨진 채 계산을 하고 있었다.
최정우 / 샌프란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