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소한 일상의 고마움

2012-06-0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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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우리집 배관에 문제가 생겨 대공사를 해야 했다. 이런 쪽으로는 심하게 문외한인 나는 부엌 한 켠이 유독 따뜻하다 생각을 하면서도 고작 한국의 온돌방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그 마저도 금세 잊어버렸다. 그러기를 두어 달, 예년의 세배에 가까운 개스비 청구서를 받고, 보일러실에서 물이 새는 걸 발견하고 나서야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대략 깨달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파이프만 갈아 끼우면 문제 해결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했던 나는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 보고는 기겁을 했다. 배관공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고 거기에 벽, 바닥을 뜯어서 말리는 회사, 보수해 주는 회사, 페인트칠 해주는 회사, 바닥 깔아주는 회사 등등에서 견적을 받아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따뜻한 물을 잠궈야 했다. 설거지나 양치질은 당연히 찬물로 해야 했고, 샤워 같은 건 20분 거리에 사시는 시부모님 댁에 가서 해결했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뛰어놀아 수시로 지저분해지는 두 아이들을 씻길 때는 곰국 끓이는 솥 두 개에 물을 끓여서 찬물과 섞고 바가지로 물을 끼얹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따뜻한 물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했는지 뼈저리게 사무쳤다.


뿐만 아니라 공사를 한다고 터진 배관 쪽의 마루를 다 들어내느라 하필 그 근처에 있었던 세탁기, 건조기를 바깥에 두다보니 빨래도 어려웠다. 열흘을 견디다 근처 빨래방에 가서 밀린 빨래 몇 광주리를 하고 왔다. 아이들한테는 되도록 옷을 더럽히지 말고 놀아달라며 씨도 안 먹힐 소리를 해댔다.

며칠 지나서는 바닥 아래쪽에 가득 찬 습기를 말려야 한다며 부엌 한 켠의 마루를 몽땅 뜯어놓았다. 그 근처에 가지 말라고 아이들한테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그다지 귀담아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부엌이 그 모양이니 집에서 음식을 하는 것도 불편했고, 당연히 식사를 바깥에서 해결하거나 사와서 먹는 날이 많아졌다.

대충 이사하기 전날 짐 쌓아 놓은 꼴로 몇 주를 지내다 보니 아주 중요한 인터뷰 날짜를 잊어버린다거나 하는, 특별한 기억력이 필요 없는 일들도 깜빡깜빡하는 진귀한 현상이 일어났다.

보험회사를 비롯한 각종회사들과 수 십 차례 통화를 하고 닦달을 하고나서야 마루가 덮어졌고 뚫어진 벽이 막아졌다. 물이 새는 곳을 파서 배관 공사를 끝내자마자 다른 곳이 터지기도 하고, 콘크리트를 덮은 벽이 하루 만에 금이 가기도 하고...

그 숱한 과정과 스트레스 받던 시간들을 주절주절 말해 무엇하랴. 시간이 더 길어지지 않고 공사가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무릎 꿇고 감사해야할 이유가 충분했다.

아직 몇 가지 정리할 부분이 남아있지만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몇 주 만에 물을 끓여 커피를 한잔 탔다. 실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커피 향이었다. 따뜻한 기운이 목으로 전해졌다. “아…끝났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니 조 /마케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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