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소 현 <극작가, 시인>
책방에 가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세상살이에 치여 마음이 팍팍해졌을 때 책방에 가면 큰 위로를 받는다. 집 근처에도 좋은 책방들이 있어서 자주 들르곤 했다. 이 책 저 책 뒤적이고 냄새도 맡으면서 자극도 받고, 마음이 느긋해지곤 해서 정말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 가까운 ‘반즈앤노블’이 문을 닫았다. 한참 후에 가보니, 개밥 파는 집으로 변해 버렸다. 책방이 개밥집으로 바뀌었다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사람 마음의 양식보다 애완동물의 일용할 양식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일이 개밥 챙기는 일만도 못하다는 이야기인가? 설마, 그렇게까지 비약할 필요는 없겠지. 단순한 우연이거나, 자본의 논리에 밀린 거겠지…
그러더니 ‘보더스’가 파산하고, 집에서 좀 먼 곳에 있는 ‘반즈앤노블’마저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엔 약국이 들어섰다. 인류가 아프긴 꽤 아픈 모양이다. 그래서 이제는 차를 몰고 한참 가야 하는 곳에 ‘반즈앤노블’ 하나만 달랑 남았다. 멀리 있어서 큰마음 먹지 않으면 가게 되질 않는다. 제법 큰 동네에서 이게 무슨 꼴인가… 서글퍼진다.
서점이 망한 것은 인터넷이나 전자책 때문이란다. 하긴 뭐, 책이 필요하면 도서관에 가던가, 인터넷에서 보면 될 것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인터넷에 토막 지식은 넘쳐날지 모르지만, 거기서 삶의 지혜를 얻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람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뒹굴뒹굴 여유롭게 읽을 수도 없고, 화장실에 앉아서 읽을 수도 없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인터넷이니 SNS니 하는 것들이 빠르고 편리한 지는 몰라도, 사람을 얄팍하고 강파르게 만드는 원흉들이다. 예술에 있어서는 더욱 치명적인 독이다. 휴대전화도 없는 아날로그 세대인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글을 읽었다. ‘산울림’의 가수 김창완을 인터뷰한 기사의 한 토막이다. 김창완은 일절 SNS를 하지 않고, 스마트폰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SNS가 세상의 일부로 완전히 체화됐어요. 나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지 않아요. 또 모든 사람의 궁금증에 답해줄 능력도 용의도 없어요… 이제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악수하고 잔 부딪치고 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요. 너무 정보가 많이 오는 거죠. 오랜만이다 하고 악수하면 손의 보드라움과 체온, 그 사람의 표정까지 다 정보잖아요. 근데 SNS는 체온도 아니고 음성의 느낌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글자 쪼가리라고요”
“사람들은 SNS로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모양인데 난 그게 못마땅해요. 외로움은 사람만이 느끼는 일종의 천형 같은 건데, 그걸 감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발칙해요. 감히 휴대폰 하나로 외로움이 가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마어마하게 가소로워요. 외로움이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데 말이에요. 나는 거짓으로 외로움을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아요.”
미국의 어느 도시에 이런 세상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이 헌 책방을 열었고,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헌 책방이 하나 생겼으면 정말 좋겠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한국 정부가 정한 ‘전 국민 독서의 해’란다. 그런데 거의 성과가 없는 모양이다. 책은 넘쳐나는데 읽는 사람이 없으니… 책방이 개밥집으로 변하는 세상이 참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