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 임제(중국 867년 몰) 선사의 그 가공할 언어적 폭력과 패륜적인 서슬은 소름 끼치는 전율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 그 웅혼한 선적 기상은 참으로 통연하다.
그 말씀에 숨은 뜻은 통상 마음에서 일어나고 마주치는 모든 번뇌와 미혹은 물론, 권위와 우상으로서의 부처와 조사에 대한 고정관념과 집착까지도 단칼에 끊어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배 대상인 부처나 조사를 포함해 바깥에 존재하는 일체의 사물과 현상으로부터 해방되어, 독자적인 안목과 자유의지로 절대 경지를 구현하라는 서늘한 주문이다.
부처란 밖에서 찾으면 잃고 구하면 아득히 멀어지는 것이니,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고 수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잠들어 있는 부처의 성품을 깨워, 성취해야할 ‘자기모습’이라 하겠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라고 한다. 때로는 경계삼아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헷갈리게 하지만, 그러나 저러나 마음이 곧 부처이다. 해서 ‘마음밖에 부처 없고 부처밖에 마음 없다’고 한 것이다.
돌아보니 이 중생은 제 마음자리 한번 야무지게 다듬이질해 보지 못한 주제에, 밖으로만 쏘다니며 세상 먼지란 먼지는 다 덮어 쓰고, 괜스레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요변을 떨거나, 왕왕 오지랖 넓게 남의 제사상에 콩 놔라 팥 놔라 끼어들다 구정물 뒤집어쓰기 일쑤였으니, 한 세월 아무 이득 없이 남의 소나 세고 모래를 쪄서 밥을 짓고 다닌 꼴이라,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구나.(문태준의 시 ‘바깥’ 중에서) ‘웬수’로고. 나는 나의 ‘웬수’로다. 하나, 그래도 ‘그 분’은 너는 너의 영웅이라 수기를 주신 터.
불가에서 말하는 영웅은 한 시대를 주도한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이나, 단순히 인류의 행복과 역사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영웅은 자기극복의 지혜로 인류의 공동선과 정의, 행복의 증진을 위한 보편타당한 법칙을 파악하고 인격적 완성을 성취하여, 자기 삶을 인간의 궁극적 가치에 송두리째 바친 사람을 말한다. 나아가 청정고결한 절대평온의 경지에서, 마땅히 발현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정을 지니고, 무한한 자비를 행사함으로써 불멸의 진리에 값한 사람. 그를 일러 영웅이라 한다. 대웅이라 우러러 칭송한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다. 스스로 존귀한 영웅임을, 모든 중생이 그 마음속에 고요하고 아름다운 법성을 갖춘 미완의 부처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아 부처 찾아 삼만리, 밖으로 나다니는 그릇된 생각만을 떠나면 그대로 의젓한 부처인 것을.
결국 끊임없이 바깥 경계에 걸려 마음이 만신창이가 됨으로써 자신이 자신의 ‘웬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안으로 돌이마음 하여 ‘나’ 한 번 크게 죽음으로써 자신의 영웅이 될 것인가는,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일찍이 먼저 되신 위대한 영웅. 마음은 부처를 빚어내는 근원임을 일깨워 주신 자비의 화신이시며, 움직이되 바위처럼 고요하였고, 머물되 바람처럼 자유로웠던 ‘그 분’을 새삼 기린다. 그 은덕과 그로 말미암은 환희가 다함없으니 하마, 천공이 넓다한들 그만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