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에는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 가운데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학생들도 20여명이 있다. 대부분 이 학생들은 등록금 면제의 장학금을 받는다. 그러나 기숙사비와 생활비 조달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이 학생들이 주말에 ‘알바’(파트타임) 일을 한다. 유학생 신분과 피부 색깔에서 오는 인종차별대우로 이 일조차 쉽지가 않다.
지난 4년 동안 우리 부부는 한동대 외국인 교수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 동안 아내는 나름대로 아프리카 학생들을 도와주었다. 우리가 한동대를 떠날 때 이 학생들은 아내에게 선물을 했다. 각자가 사인을 한 아내와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사진 밑에는 ‘We Love You, Mom’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학생들은 일일이 우리와 석별의 포옹을 했다. 한동대에서 담아온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다.
흑인 학생들은 가끔 한국사회에서 받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 눈물을 흘렸다. 몇 학생들이 어느 교회에 초대되어 간적이 있다. 친교시간에 한 어린 학생이 다가와서 손을 만지며 “꺼먼 것이 묻어나지 않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 부부가 미국 유학시절에 겪었던 일을 되새겼다. 1960년대 필라델피아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이웃 미국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우리 좌석 옆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았다. 이를 눈치 챈 목사님이 예배 후 인사 때 미안하다는 말을 우리에게 건넸다.
이(李)자스민씨(35)가 이번 4.11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에 당선됐다. 필리핀 태생으로 한국 남편과 결혼하여 한국에 귀화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의 당선을 놓고 소셜네트웍(SNS)돠 인터넷을 통해 인종차별적인 공격이 난무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매매혼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우리 직장을 뺐었다’라는 것이다. 일부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 혐오증)이다. 한국에는 지금 한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 100만에 이르고 있다. 세계화 속에서 다문화 가족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자스민씨는 1995년 필리핀 아테네 대학 생물학과 재학 중 필리핀에 정박한 외항선 선원 이동호씨를 만나 열애를 했다. 당시 자스민씨는 19세이고 이씨는 39세였다. 둘은 몇 달 후 결혼, 자스민씨는 한국에서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의 며느리가 됐다. 그리고 아들과 딸을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2010년 여름 영월 옥동천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물 속에 빠진 딸(11)을 구한 남편이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숨졌다. 자스민씨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비극이었다.
자스민씨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이주 여성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문화와 언어문제로 고생하는 다문화 가족들을 도왔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이 일을 적극적으로 실천했으며 3년 전부터 이주 여성들이 만든 봉사단체 ‘물방울 나눔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한국 사회에서 이주 여성에 대한 편견 퇴치운동에 앞장 서 왔다. 자스민씨는 이 봉사활동과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 엄마로 주인공을 맡은 후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자스민씨가 아들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 봉사활동을 할 때다. 아들 친구들이 자스민씨에게 이렇게 조롱을 했다. “피부가 왜 까매요. 아프리카 말 한 번 해봐요.” 자스민씨는 아들이 위축 될까봐 “기죽지 마, 너는 한국말도 하고 필리핀말도 할 줄 알지 않아?”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자스민씨는 이번 인종차별 공격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진실은 언제나 승리하게 마련이에요.”
김용 다트머스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로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을 때 미국 한인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도 한 목소리로 환영했다. 더구나 백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미국 사회도 한 목소리로 환영했다. 우리는 같은 목소리로 이자스민씨의 당선을 축하해야 하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허종욱/ 한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