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통 속에 발견한 감사

2012-04-21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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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9일 수요일은 내 생애 잊지 못할 몇 날 중의 하나이다. 그날은 9가 3개나 겹친다고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는 날이라고 뉴스에서 아침부터 떠들고 있었지만 저녁에 들어온 남편의 얼굴빛이 백지장보다 더 하얗게 변한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해고’라는 풀기 싫은 선물 보따리를 가져온 것을 알았다.

나도 이미 7월24일에 해고가 돼서 집에 있는 형편이다 보니, 그 내놓기 싫은 보따리를 안고 집에 오는 남편의 발걸음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나의 현재 상황을 찬찬히 생각해 보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적어 보았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헤아려 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우리만큼 마음이 담담해지면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이 ‘가족’이라는 것을 알았다.

건강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남편과 두 아이들. 이제까지는 남편이 내 곁에 있고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고 서로에게 충실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었었는데 이것이 진짜 귀한 보물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었다.


그 해 11월 나는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안 친지의 배려로 직장을 잡았고 남편은 플러밍 비즈니스를 아주 조심스레 시작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 일을 통하여 내가 현재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게 됐으니 감사한 일아 아닐 수 없다.


이미애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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