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표율 70%’

2012-04-1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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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총선이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불과 한두달 전에는 상상도 못한 결과이다. 부정부패 이미지로 인기가 바닥을 헤매던 새누리당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선거를 진두지휘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주가는 하늘로 치솟았다.

그런가 하면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어도 국회를 접수할 것 같았던 민주통합당은 지금 잔뜩 기가 꺾인 분위기이다. 수도권 지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전체 의석에서는 새누리당에 크게 뒤진다. 국민들이 여당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며 자만하는 것이 아니었다. 솔깃하며 기울던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천 잡음, 후보의 막말 파문 등이 여지없이 밀쳐내 버렸다.

선거는 역시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새삼 확인된 결과이다. 아울러 정책은 실종되고 상호 비방만 난무하면 유권자들이 어떻게 하는 지를 잘 보여준 선거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가 필요합니다” “애국심으로 꼭 투표해 주십시오” … 캠페인 내내 수없이 강조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거의 절반은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54.3%. 내 한 표가 나라를 바꾼다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으면서도‘한 표’를 내버린 유권자가 두 사람에 한명 꼴이라는 말이다.

유권자 의식조사를 보면 투표를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투표해도 바뀔 것 같지 않아서’ 이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희망, 그래서 지금보다는 살기가 좋아지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투표할 마음이 생기는 데“여당이나 야당이나 하는 짓이 똑같다” “후보를 봐도 그 놈이 그놈”이라는 생각뿐이니 무슨 투표냐는 것이다. 정치에 신물이 난 것이다.

이렇게 미적지근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으려니 이번 선거에서는 유난히 튀는 약속이 많았다. 가장 많았던 것이 투표 독려 약속. 투표율이 높을수록 야당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야권 성향 인사들의 “투표율 70% 넘으면” 약속들이다.

“미니스커트 입고 율동하며 노래하겠다”(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 기술 대학원장)는 파격적 약속,“긴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겠다“(이외수 소설가)는 비장한 약속이 있었는 가하면 개그맨 김제동 씨는 투표율이 70%를 넘을 것으로 본다며‘온 몸으로 투표’라는 글과 함께 상반신‘누드’를 공개했다.

그런가 하면 ‘당선되면’‘목표를 달성하면’ 스스로 망가지기를 마다 않겠다는 약속들도 여럿 있었다.“당선 100일째 되는 날 팬티 바람으로 지역구 거리를 달리겠다”는 선언을 한 후보가 있었는 가하면,“통합 진보당이 20석을 확보하면 살사댄스를 추겠다”(심상정 통합진보당 대표)는 약속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아울러 통합진보당이 원내 교섭단체가 되면 이정희 공동대표는 “뽀글이 파마를 하겠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파란 망사 스타킹을 신겠다”고 약속했다.

아마도‘투표율 70%’가 넘었다면 실현 가능했을 일이고, 그래서 여러 점잖은 인사들의 망가지는 모습을 국민들은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이번 선거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국민들의 뿌리 깊은 정치 염증을 그 정도 자극으로 녹여내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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