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4-0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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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장지뱀이 갓버섯 펴지는 모습에 놀라 달아나고 변성기 막 끝낸 수꿩이 낮은 봉분 너머에서 몇 번인가 울었다 갑자기 초롱꽃이 왁자한 것을 보아 이는 필시 두눈박이 쌍살벌이란 놈이 들어간 것임이 분명하다 착하게 엎드린 퇴적암을 사이에 두고 개암들이 실하다 올해는 해거리 나무에도 열매가 많이 달리려나 보다 주인 없는 유혈목 허물이 죄 많은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시간, 멀리 보이는 인간의 집 한 채 쓸쓸하다.


- 유재영(1948 - ) ‘누리장나무 아래에서의 한 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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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늘 한가롭고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여겨보면 장지뱀, 갓버섯, 누리장나무, 초롱꽃, 꿩, 쌍살벌, 개암, 유혈목 들도 개체를 유지 번성시키기 위해 최상의 노력을 다 하느라 바쁘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봄에는 더욱 그렇다. 바쁘지만 착하게 서로 어울리고 있는 자연 속에 앉아서 바라보니 살아남기 위해 남을 해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느라 아우성치는 죄 많은 사람들의 세상이 문득 불쌍하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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