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룩한 분노

2012-03-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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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대 목사 <평화의교회>

영국의 가디언지는 최근 호주의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임종 환자들을 오래 돌보면서 얻은 경험인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소개했다.

이 기사는 한국 신문에도 실렸는데 다섯 가지 중 네 가지(내 뜻대로 살 걸, 일 좀 적당히 할 걸, 친구 좀 챙길 걸, 도전하며 살 걸)는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인데 반해 나머지 한 가지인 “화 좀 더 내고 살 걸”은 뜻밖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화 좀 덜 내고 살 걸”의 오자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화 안 내고 산 것에 대한 후회가 임종 때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문은 choose honestly(정직하게 선택하라)지만 말기 환자들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산 것을 후회했고 심지어는 분노의 감정을 너무 숨기고 살다가 병까지 얻었다는 것을 브로니 웨어가 말하고 싶었으므로 틀린 번역은 아니다. 화해와 용서가 화두인 신앙인들에게 “화를 더 내고 살 걸”은 당혹스러운 후회 중 하나다.

그러나 정직한 분노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수긍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 앞 거리에서 식사를 하는 근로자들이 버리고 간 음식 쓰레기를 청소하느라 거리를 쓸다 보면 그들의 교양 없음에 화가 치미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이 먹고 간 자리를 정리해야 한다는 개념이 도무지 없다. 수거용 봉지를 비치하면 내용물을 모두 쏟아 놓고 쓰레기 봉지만 가져가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도 포기한 지 오래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낸다. 때론 혼자 거친 말도 내뱉는다. 나는 그들의 교양 없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교화할 만큼 성인군자가 되지 못한다. 화를 내다가 나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다가 식사라도 맑은(?) 공기 속에서 하고 싶어 거리로 나온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래 이것도 일종의 선교다. 대신 나는 당신들에게 내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교양인이 되라고 요구하지도 않겠다. 하지만 당신들을 향한 내 화는 조금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혼자 투덜대는 것이니 당신들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작은 일 해 놓고 생색내며 베푸는 자의 우월감을 자랑하고 개종을 강요하는 선교에 비해 화내는 선교는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아니니 서로 도움이 되리라는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빗자루를 든다.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또 다른 형태의 화는 거룩한 분노다. 예수께서도 성전 좌판을 둘러엎으시고 위선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욕도 거침없이 하셨다. 이는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무너지는 데 대한 거룩한 분노였다. 현대의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른 선택을 회피하고 너무 쉽게 가려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보다는 자녀 교육, 인맥 형성, 대접 받기를 신앙의 가치로 삼고 교회를 다니니 화 낼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분노에 따라 선택할 상황이 많아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회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유지시키는 데만 온 교회를 동원해 분노하지 말고 정말 예수께서 분노할 일들이 무엇인지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경제 양극화로 인한 모순이 깊어지는 현실에 기독교인들은 분노하고 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밖에 안보논리로 훼손되는 자연들, 개발논리로 침묵이 강요되는 핵에너지 문제,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롯한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분노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것들에 바르게 분노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때, 아니 하나님 나라에 가서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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