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뻐꾸기 우는 교회

2012-03-23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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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른베르크 박물관에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이 있다. 뒤러는 친구의 덕으로 공부를 마치고 미술가가 되었다.

이제 자신이 그 친구의 미술 공부를 도와줄 차례였다. 어느 날 친구를 찾아간 뒤러는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친구의 거친 손을 그 자리에서 스케치했다.

이 그림이 감동적인 것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손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남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한 적이 있는가. 누구를 위해 온 힘을 다해 ‘홀딱 벗고’ 기도한 적이 있는가.

‘홀딱 벗고 새’의 원래 이름은 검은등뻐꾸기이다. 울음소리가 네 음절 ‘홀딱 벗고’로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홀딱 벗고 아상(我相)도 던져 버리고, 홀딱 벗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홀딱 벗고 정신 차려라” 라고 원성 스님은 번뇌했다.

기도하는 손은 세상을 살맛나게 한다. 서로 감사하고 사랑을 나누고 감격을 주는 교회가 영혼을 구원한다. 그것이 교회를 가는 이유다.
교회의 분규가 차라리 백군 청군 줄다리기 운동 경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백군은 공동회의에서 목사 찬성표가 75%로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고 환호성이 터진다. 그러면 청군은 한미 노회에서 목사 해소 안건이 통과되었다고 기립 박수를 친다.

두 팀을 바라보고 있던 총회 법사 위원회는 노회 결정을 뒤집고 목사 해소 집행유예 결정을 내린다. 이 무슨 일진일퇴 운명의 장난인가. 목사는 교회 접근 금지 명령까지 받았다가 20여일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 교회의 분규는 이번이 연속 세 번째이다. 분규가 일어날 때마다 핵분열 하듯 새로운 교회가 생겼다. 설령 어느 편이 분규에서 이긴다고 해도 결국 다른 교인들에게 상처와 절망만 안겨주는 자충수가 될 뿐이다.

아집은 제 생각만 옳다고 내세우는 고집을 말한다. 아집과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분규가 분규를 낳는 시행착오는 계속될 것이다.

‘교각살우’는 소의 뿔을 바르게 고치려다가 소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내 탓이오’ 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이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고 신앙적인가.

지금은 ‘홀딱 벗고’ 기도할 때다. 교회가 사는 길은 오직 그 길밖에 없다.


고영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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