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3-2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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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 쌓여진 택배 물건 사이
일회용 면도기로 영감님 면도를 하네
비누도 없이 이슬비 맞으며

잇몸 쪽에 힘을 주며
얼굴에 길을 만드네
오토바이 백미러가 환해지도록

리어카의 물건들
비 젖어 기다리네
영감님 꽃미남 될 때까지


가로수는 누가 볼까 팔을 벌리고
사람들은 우산 쓰고 찰박찰박 걸어가는데
불탄 남대문 오랜만에 크게 웃고

강형철(1955 - ) ‘이슬비 이용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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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왑밋에서 장사할 때 비가 오면 공치는 날이었다. 아메리카 드림은 멀게만 느껴지고 나갈 돈이 정해져 있는 입장에서 근심만 쌓였다. 남대문 시장 노천 장사들도 힘 빠지기는 마찬가지리라. 그런데 한 씩씩한 영감님이 오토바이 백미러를 보며 비누도 없이 이슬비에 면도를 하신다. 거리가 환해진다.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개는 날도 있을 텐데 비 좀 온다고 젊은 사람들이 너무 기가 죽어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봄비다. 불탄 남대문도 상량식을 가졌다고 하니 크게 웃을 일만 남았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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