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페인, 러시아 선박들 잦은 출몰에 위기 느껴

2012-03-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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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 이야기⑨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49]

영국이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뉴 알비온 지역을 엘리자베스 1세의 소유로 문제 삼으면서 영토 분쟁지역으로 만들 즈음인 1741년, 이번에는 알래스카를 개척한 러시아 선박들이 남하하여 캘리포니아 지역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Felipe V)는 알타 캘리포니아(Alta California)로 인구 이주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과는 또 다른 대립관계였던 러시아까지 개입한다면 캘리포니아의 운명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던 것이었다.
오늘은 캘리포니아 탐험 이야기 마지막 시간으로 러시아의 캘리포니아 출현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자.

1579년부터 1639년까지 시베리아 지역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탐험을 마친 러시아는 1714년 러시아의 피터 대제 1세의 명령을 받은 덴마크 태생의 베링(Bering) 해군 대좌가 시베리아의 동쪽 끝의 해협을 발견하면서 아시아 대륙과 북미 대륙이 분리되어 있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러시아의 태평양 시대를 열어나갔다.


그 후, 베링은 1727년 시베리아의 캄차카 반도에서 배 두 척을 건조하여 알류산 열도를 따라 항해를 하다가 폭풍이 부는 바람에 육지에 상륙을 했는데 그 곳이 바로 알래스카였다. 이때 이곳에는 에스키모, 알류트 등의 인디안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알래스카란 단어도 알류트족의 언어로 ‘위대한 땅’이라는 뜻이다.

1700년대 초 태평양 연안에서의 바다표범 사냥은 러시아와 영국 어선들이 알타 캘리포니아 만으로 끌어들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러시아의 식민지가 된 알래스카는 원래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물개들의 서식지였는데 당시 모피산업이 최고로 발달했던 러시아는 알래스카에 전진 기지를 만들었다. 그들은 알래스카에서 시작하여 바다동물들을 찾아 점점 먼 바다까지 진출하였는데, 결국 캘리포니아 해역까지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중국과 유리한 거래가 이루어지자 이 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러시아는 1799년 러시안 아메리칸 모피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 무역의 거점으로 북캘리포니아 해안가 보데가(Bodega: 창고라는 뜻의 스패니시) 만 가까이에 포트 러시아라는 요새를 만들고 1812년부터 1841년까지 러시안들이 거주했다.

그 무렵 영국도 캘리포니아 해안가를 넘나들며 바다표범과 물개 밀렵을 시작,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바다표범의 모피가죽 무역의 활성화로 유럽인들이 발길이 이어졌다.

위기를 느낀 스페인의 국왕은 부왕에게 알타 캘리포니아로의 이주를 명령했다. 그래서 1769년 최초의 알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임명받은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Gaspar de Portola)가 이끄는 육로를 통한 이민 행렬대가 이주를 시작함으로써 오랜 시간의 ‘캘리포니아의 탐험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어서 ‘캘리포니아 미션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끝>

John Kim의Spanish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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