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나눔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면서도 자아상실로 인한 실존의 문제에 직면한 우리는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 이웃의 존재를 느끼고 삶의 가치와 긍지를 갖게 되면서 자기존재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 실천의 한 방식이 기부와 봉사다.
멕시코로 의료봉사를 떠나는 우리 ‘바하 힐링 미션’ 봉사단은 너그러운 이웃들이 모아준 돈과 물건을, 거기에 담긴 마음까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심부름꾼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늘 노력한다.
이웃들이 기증해준 400개의 컵라면을 그냥 주지 않고, 수질 나쁜 현지 수돗물 대신 식수를 사서 끓여 부은 후 먹기 좋을 만큼 식었을 때 포크까지 꽂아서 손에서 손으로 건네주는 것은 따뜻한 마음까지를 전하고 싶어서이다.
이런 노력이 언제나 쉬운 것만은 아니다. 밸리의 연로하신 한 목사님이 땀 흘려 구해 기증하신 새 구두 한 무더기를 가지고 간 적이 있었다. 봉사자 일행의 일손이 너무 딸려 농장 노동자들에게 맞는 사이즈를 찾아 나눠 줄 시간이 없었다. 다음에 나누어 주겠다고 하자 동행했던 선배의사가 자신이 짬이 좀 난다고 했다. 직접 확인하고 나눠주라고 당부한 후 구두들을 내주었다.
그런데 10분도 채 안되어 돌아온 것이 아닌가. 가다가 소셜워커 4명을 만나 노동자들에게 나눠주라고 전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현지에서 노동자들의 애로사항을 농장주에게 전달해주고 봉급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곳 사정에 익숙하지 않아 “믿을만한 사람들 아니냐?”고 반문하는 그에게 당장 가서 찾아오라고 했다. 어리둥절하며 구두를 찾으러 갔던 그는 빈손으로 돌아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닥터 최, 자네 말이 맞았어. 그 4명이 벌써 다 나눠가져가 버렸단다”
최근에 기증받아 차에 싣고 갔던 2대의 전동 휠체어 중 한 대는 현지 수술의사의 소개로 캐나다 출신 봉사자를 통해 환자에게 전해주기로 되어 있었다. 백인인 두 명의 봉사자는 상당히 선한 외모로 성실해 보였다. 휠체어만 받아가려는 그들에게 우리 단체 규정상 우리가 직접 환자를 보고 전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안내로 찾아간 환자의 방 입구에는 이미 전동 휠체어가 2대나 놓여있었다. 놀란 우리에게 봉사자들은 한 대는 실내용이고, 한 대는 외출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우리 것은 화장실용이란 말인가. 왜 환자 1명에게 3대의 휠체어가 필요하단 말인가.
분노를 간신히 누르고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것은 너무 가난하고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어 이 휠체어가 그들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발이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겠습니다”
우리의 뜻을 이해했는지 알 수 없는 그들 ‘봉사자’에게 “신의 가호를”이라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우리의 마음은 씁쓸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13년이라는 세월의 산을 오르다보니 이제는 점점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피로가 엄습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오를수록 시야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 경험을 전하고 싶다 : “봉사는 젊을 때부터 시작하라, 그래야 숨이 차오기 전에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나의 실수였음을 요즘 아프게 깨닫고 있다.
최청원
내과의사
바하힐링미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