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정치의 후진성

2012-03-0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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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1일 치러지는 한국 총선에 나갈 후보를 결정하는 일을 둘러싸고 정당들이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정당들이 이름까지 바꿔가면서 표방한 새로운 정치가 무색해진다. 몇 명으로 구성된 공천심사위원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 회생하고 밑으로 향하면 정치생명이 한순간에 끝나기도 한다. 공천심사위원회 결정에 목숨을 건 기성 정치인들과 정치 지망생들의 모습이 처연하다.

공천자 명단이 발표되면 낙천자들의 거친 항의와 독설이 이어진다. ‘계파 간 야합’ ‘지분 나누기’ ‘특정계파 죽이기’ ‘정치적 보복’ 등 듣기에도 민망한 비판들이 난무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고 실제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낙천자들의 반발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낙천을 둘러싸고 터지는 잡음과 혼란은 도를 넘었다. 선거 때마다 이런 혼란이 되풀이 되는 것은 후보 결정과정에 누구나 수긍할만한 공정한 룰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정당간의 경쟁은 비교적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정당 내 경쟁은 여전히 비민주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선 후보를 결정할 때는 국민여론을 일부 반영하긴 하지만 아직은 흉내 내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 결정은 비민주적 형태의 결정판이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는데 정작 국민들의 의견과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 당에서 일방적으로 후보를 결정한다. 이런 하향식 공천에 대해 “공천이 아니라 사천”이라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나마 과거보다 조금 나아진 점은 외부 인사들을 심사위원으로 임명해 당내 실세들의 입김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고 투명한 공천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공천은 미국처럼 지역 경선을 통해 당원들의 의사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가장 선진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들은 워낙 이합집산이 심하고 상의하달 시스템으로 운영돼 와 후보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당원베이스가 없다. 특히 그냥 이름만 올리는 당원이 아니라 당비를 내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진성 당원’, 즉 진짜 당원이 별로 없다.

미국과 같은 형태의 예비선거가 불가능하다면 영국처럼 지역구마다 심사위원회를 두어 후보자의 자질을 민심에 의거해 평가하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독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됐다지만 덩그러니 중앙당에만 심사위원회를 두고 이들에게 모든 후보의 선정을 맡기는 것은 혼란과 잡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외부 인사들이 수백개에 달하는 지역구 사정을 일일이 헤아려 적합한 후보를 가려낸다는 것은 애사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동안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정치의 발전은 경제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돈 선거가 사라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정치를 이끌고 갈 인물들을 결정하는 과정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훨씬 못 미친다. 선거 때마다 공천을 놓고 벌어지는 싸움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경이었다. 이런 꼴사나운 풍경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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