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원님 행차 시비

2012-02-2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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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가 별로 없던 조선 시대에는 원님 행차가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아전들이 “물렀거라”를 외치고 농악대는 피리불고 장구 치며 100여명의 수행원들이 부임지로 내려가는 사또의 수발을 들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지역 축제가 열릴 때 이 원님 행차를 전통 행사의 하나로 재현하는 곳도 있다.

원님 행차는 구경거리이기도 했지만 누가 지배자고 누가 피지배자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시위이기도 했다. 원님 행차가 지나가는 것을 백성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지켜봐야 했고 그 앞에서 괜히 얼쩡거리다가는 치도곤을 맞기 십상이었다.

시대와 지역이 바뀌어도 ‘원님 행차’만큼 누가 권력자고 누가 피지배자인가를 분명히 보여줄 때는 없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한 번 뜨면 수 백 명의 경호원과 의전, 비서 등 수행원이 동시에 움직인다. 민주 국가의 주인이라는 주민들이 겪을 불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가 가는 길목은 보안을 이유로 교통이 모두 통제된다. 작년 오바마가 LA에 왔을 때 보안을 이유로 지나갈 길도 시간도 알려주지 않은 채 웨스트 LA 일대의 길을 모두 막아 이곳 주민들은 퇴근 시간에 집에 가지 못하고 여러 시간 거리를 방황해야 했다. 항의가 빗발쳤지만 백악관은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이나 사과를 내놓은 적이 없다.


지난 주에도 오바마는 LA를 방문, 350만 달러를 걷어 갔다. 벨에어 호화 주택에서 열린 기금 파티의 VIP 티켓 한 장 값은 3만2,000달러였는데도 80장 모두 매진됐고 그보다 싼 일반 티켓도 250~500달러였는데 1,000장이 역시 매진됐다. 99%의 편에 서 1%를 공격하던 오바마였지만 역시 돈을 챙길 때는 1%한테로 가 손을 벌렸고 그로 인한 교통 통제로 99%의 보통 사람들은 고통을 겪었다.

대통령이 공무가 아닌 기금 모금 등 사적 이유로 정부 돈을 쓸 때는 사용료를 물어내야 한다. 그러나 이 상환 비용이 실제로 들어가는 돈의 몇 분의 일로 책정돼 사실상 거저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바마는 1월 한 달 동안에만 2.900만 달러를 모았는데 2012년 선거 사이클 들어 민주당이 정부에 상환한 돈은 150만 달러에 불과하다.

물론 대통령 재임 중 기금 모금을 한 것은 오바마가 처음은 아니나 점점 더 그 빈도가 잦아지고 시작도 빨라지고 있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된 후 기금 모금 활동을 자제했지만 아버지 부시는 선거 1년 전부터 기금 모금 활동을 했고 오바마는 선거 18개월 전부터 기금 모금을 시작했다. 대통령이 기금 모금을 자주할수록 정부 지출은 늘어나고 이와 함께 재정 적자와 연방 국채도 늘어난다. 대통령의 기금 모금에 들어가는 경비의 상환 비율을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하든지 횟수를 제한하든지 가뜩이나 궁핍한 정부 예산의 낭비를 막기 위한 조치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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