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2012-01-31 (화) 12:00:00
낯선 건물 난간에
점자 화살표 하나 있다
그 화살표 따라가다 보니
오로지 앞으로만 걷는 것이
세상살이 같기도 한 것인데
일순, 화살표 끊긴 자리
느닷없이 길은 지워지고
아,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벼랑 끝에 서 있는 듯
한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어
한참을 망설이던 발걸음
슬쩍슬쩍 옮겨 보지만
턱턱 앞을 막아서는
콘크리트 벽이 두껍다
그래도 뚫어야 겠지
내 몸으로 뚫어야 겠지
길을 열어야 겠지
내 발끝으로 열어야 겠지
거꾸로 날아가는 화살이 있던가
손병걸(1967 - ) ‘화살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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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국 전철역에서 승무원들이 시각장애인의 심정을 헤아려보기 위해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리고 줄지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 마음이 돼 읽어본다면 이 시의 상황을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손병걸 시인이 시각장애인임으로 실제로 늘 부닥쳤을 절망감이 생생하게 전해온다. 그러나 화자의 의지는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그는 두꺼운 벽을 몸으로 뚫고, 발끝으로 길을 열고야 말았으리라. 거꾸로 날아가는 화살은 없으니까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