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같은 민주주의
2012-01-30 (월) 12:00:00
공기가 없다면 사람은 죽는다. 그렇지만 공기가 없는 우주나 깊은 바다 속으로 가기 전에는 우리는 공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공기가 풍부한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여러 인종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 미국, 지금이야 미국민들이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믿고 있지만 미국에서 이렇게 다양한 삶들이 어울려 살게 된지는 불과 몇 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
1955년 흑인이라는 이유로 운전사에게 자리를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고 거부한 로자 팍스, 그리고 그 이후 킹 목사 같은 분들의 흑인 민권운동이 없었다면 지금은 마치 공기처럼 당연히 여겨지는 일들, 이를테면 흑백 인종의 같은 반 수업에서부터 오바마 대통령 당선까지의 사건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 22세의 전태일이란 청년이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근로 기준법을 가슴에 품고 자기 몸을 불사르고 죽었다. 이 후 많은 노동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그 짐승 같던 노동 조건은 많이 향상 되어 지금은 형식적으로나마 근로기준법은 지켜지고 있다.
이렇듯 세상의 진보는 지나 보면 마치 저절로 이루어 진 듯하지만 사실은 실로 수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은 그냥 공기와 같아 너무 당연한 듯 우리가 미처 못 느낄 뿐이다.
민주화를 위해 고문 받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김근태 전 의원이 고문이 얼마 전 운명을 달리하였다. 김근태를 비롯한 민주열사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했다. 하지만 이렇게 온 몸을 던져 이뤄놓은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이 훼손되었다. 공기처럼 여겨온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신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덕근 / 자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