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1-1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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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신발 담당과 시비가 붙었다
내 신발을 못 찾기에 내가 내 신발을 찾았고
내가 내 신발을 신으려는데
그가 내 신발이 내 신발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내 신발의 주인을 분명히 기억한다고 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것보다
누군가 내가 나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더 참에 가까운 명제였다니
그러므로 나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이 구두의 이 주름이 왜 나인지
말하지 못한다


윤성학 (1971 - ) ‘구두를 위한 삼단논법’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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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집 신발 담당이 내 구두를 보고, 분명히 기억한다며,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한다. 구두에 이름표 붙여놓지도 않았고, 내게 익숙한 구두의 주름이 내 신발이라는 증표라고 우길 수도 없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문득, 화자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헷갈린다. 내가 알고 있는 나 자신이 ‘참 나’인지 존재론적 회의를 품는다. 하긴, 나도 거울에서 만나는 멍청하고 탐욕스런 인간이 과연 ‘나’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기는 하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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