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가 남이가?”

2012-01-07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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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 출장 중 초등학교 동창을 십여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그 동안 친구는 결혼을 하고 이혼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데 친구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그동안 지지고 볶고 싸우느라 지옥 같았는데 이혼하니까 아주 홀가분하다. 딸아이에게도 부모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늘 미안했다”며 진심으로 편안해 했다.

하지만 곧 이어 그가 털어놓은 이혼 사유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가 식구들이 교포들이라 그런지, 미국식 한국식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데 못 견디겠더라.


자기 좋은 때는 미국식, 불리하면 한국식 …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 모르겠더라”는 그의 말에는 마음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내가 미국생활 30년차 ‘고참 교포’라는 사실을 그는 순간 잊었던 것 같았다.

필자의 경우도 의식적으로 미국식 문화에 적응하려 했던 시절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는 한국문화가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여겨졌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수십년 지나는 동안 한국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면서 지금은 한국식 문화가 더 우월하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식 문화와 미국식(혹은 서양식) 문화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옷으로 따지면 한복과 턱시도요, 음식으로 따진다면 김치와 치즈 같이 본질은 같으나 외형상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민 1세는 한국식, 2세부터는 미국식으로 하기로 정한다면 얼마나 쉽고 간단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필자와 같은 1.5세(정확히는 1.2세)는 난감하다. 이질적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극복할 보편적인 가이드라인 같은 것은 없을까.

분명한 것은 이질적 문화·사고방식이 책임의 회피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은 가해자,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 뺨도”는 피해자에게 주는 말로 받아들여야 온전히 해석되듯 한국식과 미국식도 철저하게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범위 내에서 선택되어져야 할 것이다.

우선 친구나 가족같이 이해가 얽히지 않은 관계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을 기억 한다면 미국식이 좋은지 한국식이 좋은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업상 이해가 얽힌 사이거나 근로계약서상 갑과 을의 관계 등 헤게모니를 수반할 때는 일이 좀 복잡해진다. 내가 계약서상의 ‘갑’인가 ‘을’인가에 따라서 능동적 또는 수동적 해석이 필요다고 본다.


만일 내가 ‘갑’의 입장, 즉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라면 일관성이 중요하다. 나의 이해나 수지타산과 상관없이 상대방에 대한 일관성 있는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안 되면 실망과 좌절이 오고 결국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변명과 함께 관계는 깨어진다.

반대로 내가 ‘을’의 경우라면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방의 의중을 읽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갑의 상대적 우위를 인정해 주고 거기에 맞추는 겸손한 자세가 요구된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근거한 한국식 문화와 실용적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서양문화는 충돌의 소지가 많다. 한국 사람으로 영어를 제대로 배운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듯 두 문화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 열쇠일 것이다. 한국식 미국식 문화의 골이 아무리 깊다 한들 우리가 남이가?


이제호 / 재정 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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