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저 차베스| 치카노 출신 소수계 위한 민권 운동가

2011-12-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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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36]

미 서부지역에서 대대손손 살고 있는 스페인계 혈통의 자손들을 가리켜서 라티노 사회에서는 치카노(Chicano)라고 부르는데 대략 700만-800만명에 이른다. 그들 중 일부는 미국화가 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멕시코의 문화와 종교, 관습, 언어를 유지하며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미국사회에서 소수민족에 관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항상 이들이 앞장서곤 했다.

오늘날에도 이들 치카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언론 등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면서 소수민족, 인권, 노동 등에 관련한 약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음을 역시 소수민족의 일원인 우리 한인 커뮤니티도 알아야 한다.

이번에는 그들 치카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시저 차베스(Cesar Chavez: 스패니시 발음은 세사르 차베스)란 인물에 관하여 탐구해 보기로 하자.


차베스는 멕시코계 부모를 둔 농장 노동자 출신으로 1960~1970년대 농장 노동자의 리더이며 라틴 및 소수민족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가 내건 슬로건으로는 “단합하고 노력하면 정의는 이루어진다”는 의미인 “Si se puede!”[씨, 쎄 뿌에데]가 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노동계의 슬로건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그의 생일인 3월31일을 중심으로 3월30일 혹은 4월1일을 시저 차베스 날로 지정하였는데, 캘리포니아뿐만이 아닌 텍사스, 애리조나, 콜로라도, 심지어는 워싱턴 DC의 공원과 문화센터, 도서관, 학교와 거리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져 있다.

가령 LA의 경우 1994년부터 Cesar Chavez Avenue는 선셋 길(Sunset Blvd.)이 로스앤젤레스의 중심에서 끝나면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길 이름으로 지정되었는가 하면, 2010년 텍사스의 달라스 시의회는 2월10일 다운타운을 지나는 75번 고속도로(US Highway 75) 일부구간인 Pacific과 Grand Avenue 사이를 시저 차베스로 다시 개명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차베스는 1927년 3월31, 애리조나주 유마(Yuma) 인근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온 그의 8명의 가족은 끼니를 얻기 위해 콩농장과 상추농장을 비롯하여 체리농장, 목화농장 등을 전전하며 막노동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1942년 차베스는 병약한 그의 어머니가 농장에서 막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지자 8학년을 마지막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어머니를 대신하여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1944년 그는 17세의 나이에 미 해군에 입대하여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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