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무심코 집어든 책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여자가 있다. 겉으로는 아주 화려하고 가진 게 많은 듯 보이지만, 어린 시절에 겪었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냉소적인 삶을 살아가는 서른 살의 대학교수 문유정이다.
그녀는 세 번째 자살시도 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지루한 치료 과정 대신 수녀인 고모를 따라 한 달간 사형수를 만나는 일을 택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상의 밑바닥으로만 떠돌다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스물 일곱의 정윤수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생의 절망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그의 눈빛에서 유정은 너무나 익숙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남자, 세 번이나 자신을 살해하려 한 여자. 다른 듯 닮아 있는 두 남녀는 일주일에 단 3시간 주어진 만남을 통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애써 외면해 왔던 자기 안의 상처를 들추고 치유해 나간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는, 늘 그렇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었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생애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행복한 시간이 된다.
발간된 지 5년도 더 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울고 또 울었다. 그 인생의 첫 기억이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면 매를 드는 아버지에 대한 살의로 시작되는 한 사형수와, “실은, 나도 같은 부분이 손상된 동종의 불구자라고. 그러니까 이제는 당신과 내가 진짜 이야기를 해보자고” 그 사형수에게 제안하는 한 여자를 만나고 나서 나는 감히 어떤 삶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이 점점 더 흉흉해 지는지 어린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들을 자주 접한다. 두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는 그런 사건들을 들을 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 그 어린 아이들이 사건의 현장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그런데도 사형제 존폐에 대한 나의 의견을 내놓는 데는 자신이 없어졌다.
유정이 윤수를 만나고 고모인 모니카 수녀에게 저 사람은 어떤 죄를 지어서 여기 왔냐고 묻자 수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난 저 애를 오늘 처음 만났다. 그게 다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너는 누구를 처음 만나서, 이제껏 무슨 나쁜 짓을 하다가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까? 하고 묻지는 않잖니. 오늘의 저 아이가내게는 저 아이의 전부야.”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자동적으로 그 사람을 가늠하는 가치, 예를 들어 저 사람의 경력은 얼마나 됐을까, 수입은 얼마나 될까, 같은 세속적인 기준을 배제한, 한 사람의 인생을 마주할 때 반드시 갖춰야 할 예의와 존엄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요즘 작가 공지영에 대한 이런 저런 구설수가 있는 모양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삶의 상처라는 무거운 주제로 각기 다른 인물의 시각에서 이처럼 읽기 쉽게 책을 쓸 수 있는 공지영 작가의 내공이 부럽다.
지니 조/ 마케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