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영화가 내 얘기가 아니라서 행복해요”

2011-12-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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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에 관해 얘기 합시다’ 틸다 스윈튼

“이 영화가 내 얘기가 아니라서 행복해요”

에바가 고약한 성질의 어린 아들 케빈과 함께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다.

9일 개봉되는‘케빈에 관해 얘기 합시다’(We Need to Talk about Kevin-영화평 참조)에서 고등학생인 아들이 저지른 가공할 행동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로 나온 틸다 스윈튼과의 인터뷰가 지난달 12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장신의 갈비씨로 짧은 금발을 한 스윈튼은 그를 스타로 부상시킨‘올란도’의 주인공처럼 양성동일체 같은 모습이었는데 창백한 얼굴이 소년의 얼굴을 닮았다. 동화 속‘눈의 여왕’처럼 차갑고도 깨끗한 인상을 주었지만 질문에는 유머를 섞어가면서 매우 다정하고 간단명료하며 또 지적이요 솔직하고 상세하게 답했다. 영화는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감독은 린 램지.


아이들과의 연결을 바라지 않는 여자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악몽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이 영화 보기를 권해 단, 18세 미만은 곤란


*제목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자녀들과) 도무지 대화를 하지 않는 부모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처음에는 소설의 제목과 다른 제목을 생각했지만 장시간의 제작준비 과정에서 그 것이 어느덧 하나의 부적이 되다시피 해 바꾸는 것을 포기했다. 우리는 영화에서 영화 속 모자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쉽게 답을 내리기보다 끊임없이 얘기하고 질문하려고 노력했다.


*어머니로서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바가 무엇인가.
- 이 영화가 내 얘기가 아니어서 행복하다. 부모라면 이 영화를 보고 그것이 자기 얘기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할 것이다. 내가 영화 출연에 응한 것은 내가 쌍둥이를 나았을 때의 느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때 난 무척 행복했는데 아울러 아이들이 가져다 줄 대혼란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떤 어머니들은 나와 달리 아이들이 가져다 줄 혼란과 부담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과의 연결을 바라지 않는 어머니도 있는데 바로 이 영화의 어머니 에바가 그런 여자다. 그런 여자가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악몽이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한 인격체가 되는데 태어날 때부터 사악한 아이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 사람들은 늘 악을 자기 밖의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에바의 문제는 아들 케빈의 악의와 폭력이 실제로 자기와 매우 가깝고 친밀하다는데 있다. 영화를 보면서 케빈의 악은 타고난 것이냐 아니면 에바가 그렇게 키운 것이냐 하는 질문을 하게 되겠지만 우리는 그에 대한 답을 원치 않았다. 굳이 답을 내리자면 둘 다라고 할 수 있겠다.

*에바는 대단히 복잡한 성격의 여자인데 표현하기가 힘들었는가.
- 난 이 영화 전에 역시 복잡한 내면을 지닌 어머니 역을 세 번이나 해 이 역으로 그런 어머니를 마감한다는 기분이었다. 난 여자가 어떻게 동시에 하나의 독립된 개체와 어머니 노릇을 할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영화에 돈을 대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제작에 애를 먹었다.

*케빈은 영화에서 자신의 부모를 가지고 놀다시피 하면서 아버지에게는 착한 아이처럼 굴고 당신에게는 사악하게 행동하는데 이런 양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바로 그런 점이 나를 배우로 만들었다. 어릴 때 사람들이 나의 바깥 표정만 보고 나를 평가하는 것을 깨달은 뒤 난 그들에게 나를 맞춰 행동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자신을 나타내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누군가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부분을 보여줘야 하는데 에바는 케빈에게 정직하지 못해 둘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난 그런 에바의 단절과 괴리에 대해 큰 관심이 있었다.

*케빈은 에바를 정말로 증오하는데 이 얘기는 실화인가 또는 허구인가.
- 허구다. 그러나 케빈은 에바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하고 있다. 에바는 케빈이 사악한 아이가 된 것은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에바는 그에 대한 설명을 찾고자 하나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모자가 결코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아이들은 쓰다듬어 주면 큰다는 말이 있다. 에바는 케빈을 쓰다듬지를 않는데 당신은 어떤가.
- 나의 어머니로서의 경험은 에바와 정반대다. 연기의 기쁨은 바로 이같이 나 자신과 매우 다른 것을 표현한다는데 있다. 내 아이들은 천사들로 나는 그들을(14세의 남매 쌍둥이 사비에르와 오너) 흠모한다.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노릇이란 당신은 아이들로부터 달아날 수는 있지만 결코 숨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늘 아이들이 일으키는 대혼란을 사랑한다. 그러나 에바는 이와 반대다. 우는 아이가 지겹지만 울기를 멈추게 하려고 억지 미소를 짓는데 바로 자식과의 관계에 이런 가짜를 심어놓는다는 것이 그의 불찰이다.

*당신의 패션감각은 매우 특이한데 어릴 때부터 잘 차려 입었는가.
- 내겐 두 명의 오빠가 있는데 내가 세 살 때 입은 드레스를 보고 오빠가 흉하다고 한 뒤로 드레스 입기를 포기했다. 그 뒤로 오빠들이 입다 버린 옷들을 입었다.


*당신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떤가.
-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당신은 명문 가족(스윈튼의 아버지 존경은 전직 스코틀랜드 근위대 중장이다) 출신인데 그것이 부담이라도 되는가.
- 아니다. 내 가족들 중에는 예술가들이 많아 내가 가족 중 유별난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당신은 주로 어두운 역을 잘 맡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 그것은 내가 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다시는 영화에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은 각본이 있으면 거기에 다시 끌린다. 난 굉장히 호기심이 많다. 이 역을 맡은 것도 행복한 어머니로서 그와 정반대인 에바의 노릇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관객들도 에바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하자는 의도였다. 영화의 힘은 배우나 관객이 모두 자신을 타인의 입장에 대치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

*유럽인으로서 현재 혼란을 겪고 있는 유럽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난 14년 전 아이들을 낳은 뒤로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에 살고 있어 정치문제에 일절 관여하지를 않았다. 난 가족과 일에만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고 그들의 교육 문제에 관여하다 보니 아이들이 나의 정치적 실험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내게는 예술이 정치적이다.

*스코틀랜드에 관해 얘기해 달라.
- 거기 사는 게 참 행복하다. 내게 스코틀랜드는 집인 반면 잉글랜드는 학교다. 스코틀랜드는 나의 집이요 평화요 휴가이며 자연이다. 우리는 바다와 언덕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에 살고 있는데 정말 좋다. 그래서 LA에 오는 것은 매우 이국적 경험으로 느껴진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자연을 매우 사랑하는데 난 비오는 날의 스코틀랜드의 땅 냄새가 나는 위스키의 냄새를 맡기를 즐겨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18세 미만은 안 된다. 어제 일반인들과 함께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끝난 뒤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데려와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와 연락해 함께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영화의 요체는 우리의 참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희생하는 것이다.
부모가 되면 자기의 어느 한 부분이 죽고 마는데 에바는 그럴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그는 아이를 낳고도 아직도 자신의 삶이 그리워 슬퍼하고 있다. 모든 상황은 주고받는 것으로 우리는 상황에 의한 변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러브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것의 성질과 사랑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사실에 관한 얘기다. 단순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치장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랑한다는 노력과 행동이다.

*영화에서 에바는 자기에게 악의적으로 행동하는 어린 케빈을 의사에게 데려가는데.
- 그것은 에바가 의사로부터 케빈의 그런 행동은 자기가 잘못 키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무언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가 케빈에게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하자 에바는 크게 실망한다. 에바는 자기 때문에 케빈이 못된 아이가 됐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독 린 램지와 당신 중 누가 먼저 이 영화를 만들자고 제의했는가.
- 내가 영화에 개입했을 땐 램지가 이미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램지는 매우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이 영화는 그의 세 번째 작품에 불과하다. 나는 램지를 후원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미국 사람들의 얘기여서 미국 배우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각본 내용이 사람의 내적 삶에 관한 것으로 좁혀 들면서 내가 주연하고 싶었다. 에바의 내면을 탐험하고 싶었다. 램지는 매우 신랄하고 시각적 감각이 뛰어나며 분위기 조성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감독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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